시인의 꽃 최재성  (Homepage) 2023-10-09(월) 08:15:29, 39784

시인의 꽃 정일근 펜을 잡고 오랫동안 시를 쓴 시인에게는 가운뎃손가락에 꽃으로 핀 펜 혹이 남아 있지 시인이 엄지와 검지로 힘주어 펜을 잡을 때 그 펜이 중심 잃지 말라고 단단하게 받쳐 주던 중지, 가운뎃손가락 첫마디 왼편에 맺힌 꽃송이가 고통의 순간순간 참을 수 없다는 듯 솟아오르지 그렇다고 모든 펜 혹이 꽃이 되는 것은 아니지 굳은살이 쌓여 울퉁불퉁 피어오르면 시인은 날카로운 면도칼로 싹둑싹둑 베어 버리지 아직 때가 아니면 더더욱 힘주어 펜을 잡고 밤새워 잠들지 않고 가야 하는 시의 길이 있지 길을 잃으면 다시 바닥에서 시작하길 되풀이하다가 맨 밑바닥에서 새살이 돋아 공든 탑을 쌓을 때 펜 혹이 되는 거지, 스스로 제 살 도려내는 상처 속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시인의 꽃이 되는 거지 꽃이 핀 그 손으로 시의 향기 만들어 내는 거지 쓰지 않고 두들기는 컴퓨터 자판이 펜인 이 시대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 영혼의 문이 손에 있는 거지 시인이 시를 손으로 읽는 이유를 배우고 시마다 꽃으로 핀 펜 혹의 향기를 맡는 것처럼. ☞ ‘혀꽃의 사랑법’ 시집 소개 바로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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