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여유로운 사람 김동희  (Homepage) 2008-12-05(금) 13:12:07, 139014

결국 차를 구입했다. 넉넉하게 가진 것 없이 타국에서 살림을 꾸려나가려다 보니, 안쓰던 가계부도 하루도 빠짐없이 쓰게 되었고 돈을 꼭 써야되는 부분에만 거듭거듭 생각해서 지출을 해 왔다. 차 역시 아무리 중고차지만 탈 만한 차는 최소 3000불 이상을 줘야하고, 유지비도 만만찮기에 6개월 동안 차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서 자외선 지수가 높은 햇볕에 민기 얼굴이 상당히 그을리고, 짧은 거리를 버스/전철로 다니다 보니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갈아타는 시간이 슬슬 지겨울만 해지니, 차를 사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우리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인근의 Dandenong이라는 산을 고작 30분만에 가버린 경험을 하고 나서였다. 버스/전철로 가려면 무려 1시간 30분이 걸린 거리를 말이다. 아무리 생계를 알뜰하게 꾸려나가는 것도 중요하다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호주 풍경 하나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돌아가기엔 훗날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1000cc 소형차라서 연비가 작게 들어 멀리 나가도 연료비 부담이 비교적 작다. 그리고 엔진 마운트를 갈았더니 10년 된 중고차 치고는 떨림없이 잘 나가서, 만족하고 있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차선이 반대이다. 즉 왼쪽 차선으로 주행해야하고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다. 왼손으로 기어변속해야하고 좌/우측 깜빡이가 오른쪽에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여기서 합법적으로 운전은 하고 있지만 처음 며칠 동안은 적응이 잘 안되었다. 역주행을 할 뻔하기도 했고, 깜빡이를 켜려고 했지만 와이퍼를 움직이기도 했다. 빽할 때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아직 오른쪽으로 고개를 먼저 돌린다. 그러나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되는 것은 횡단보도 길에서이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에 와서 보행자로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부터 놀라웠던 사실이었다. 한국은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가 우선이다. 즉 차도에 지나가는 차가 없을 때를 기다려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이 우선이다. 보행자가 없을 때 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문화이다. 그래서 보행자가 신호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으면 대부분의 차는 100미터 전방에서부터 서행을 하고 정지선 앞에 딱 멈추어 서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다가오는 보행자가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지내온 감각으로는 충분히 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되는데도 차가 멈춰선다. 그 차를 향해 웃으며 땡큐하면 운전자가 은근한 미소로 화답한다. 차선은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는데, 아직 신호없는 횡단보도에서는 한국의 감각으로 횡단보도를 통과한다. 그러고 나서 문득 궁금해져서 빽미러로 뒤를 돌아보면 보행자에게 불쾌감을 준듯한 느낌이 들어 개운치 않은 뒷맛을 종종 남긴다.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은 버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운전기사가 승객이 탈 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차원의 서비스교육에 의해서이겠지만 말이다. 승객에게 인사를 그렇게 건냈을 때 화답하는 승객은 눈을 뜨고 찾아볼 수 없었다. 태반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호주에서는 승객과 기사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승객이 자리에 앉으면 버스는 출발한다. 내릴 땐 승객이 어김없이 기사를 향해 "땡스"하고 내린다. 그러한 것이 문화로 고착되어 있다보니,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 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땡스"를 안하고 내리는 것이 더욱 어색한 느낌이 남았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짐을 종종 느꼈다. 마음이 여유로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면 곧 마음이 여유로워진다는 류의 말은 진실임을 체험한다. "빨리 빨리"의 문화였던 한국, 그 모습이 그 안에서는 이토록 확실히 느껴지진 않다가,, 여유롭게 살아가는 문화의 장 속에 있다보니, 그 모습이 확연하게 돌아봐진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허겁지겁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역사의 산물이 "빨리 빨리"의 문화를 낳았다. 한국과 호주 모두 미국발 경제위기를 함께 겪고 있지만, 대처방식 또한 내 눈엔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 책임지지 못할 임기응변성 대책발표로 시장을 단박에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섣부른 선입견이 한 몫하겠지만 호주는 근본적으로 차근차근하게 대응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모든 운동은 문화운동이 되어야 변화된 모습이 자연스럽다. 설령 더디게 변화되더라도 말이다. 교육 또한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 그 마음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본이 되고, 그 모습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조그마한 문화가 되고,, 그런 문화가 기존에 문화에 균열을 가한다면! 너무나 로맨틱한 상상인가! 한국에 돌아가면 횡단보도의 보행자를 우선하는 운전습관(보행자는 차보다는 약자이다), 버스 기사의 인사에 답례하기, 내릴 때 "감사합니다" 인사하면서 내리기! 를 용기있게 실천해보려 한다.

최영도		자동차 얘기 읽다보니 이곳에서 계속 사용하던 `삐삐`는 어떻게 처분하고 가셨는지? 궁금해 지는군요. 그곳에서의 생활 이렇게 종종 올려 주시면 더욱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좋을 것 같습니다. 홍미샘과 민기에게도 안부전해 주세요......	2008-12-05 13:50:37
김홍미		'삐삐'는 일시중지 중입니다^^ 최영도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성함만 봐도 반가움이 밀려옵니다. 오늘 동희샘이 <회 한접시에 소주 한잔 하고싶제?>라고 묻는데 선생님 얼굴이 딱 떠오르더라구요...^^ 정말 그러고 싶은 밤입니다...	2008-12-27 01:35:08
김홍미		모든 운동은 문화운동이 되어야 변화된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당신의 로맨틱한 상상이 통합교육이 잘 정착될 수 있는 기본인 것 같아요.	2008-12-29 1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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