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제비꽃 - 이 시5 김영국  (Homepage) 2020-04-14(화) 20:00:37, 13397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에 빼앗긴 강산에도 봄이 왔듯, 코로나에 점령당한 산야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가 않다.[春來不似春] 활짝 핀 벚꽃 아래, 한창인 유채꽃밭에 사람이 없다. 산책길에 만난 사람도 마스크를 낀 채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린다. T.S. Eliot의 ‘잔인한 사월’이 따로 없다. 벚꽃 유채꽃이 저러하거늘,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길섶의 작은 풀꽃이야 오죽 쓸쓸하겠는가. 옛날 보리밭 이랑이나 논두렁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천덕꾸러기들에 비로소 눈을 준다. 나루공원 잔디밭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민들레가 눈길을 끈다. 바지런한 관리인의 눈과 손을 용하게 피한 어미 민들레의 후손인 듯 고만고만한 크기와 모양이다. 형제자매가 작은 마을을 이루어 오순도순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감돈다. 이웃 습지 공원에는 작디작은 파란 꽃이 떼를 지어 피어있다. 잔디밭의 민들레는 불청객인데도 주눅들지 않고 생글거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주인 손님이 따로 없는 생태공원이다. 그런데도 이 꽃은 키 큰 풀 아래에 수줍은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눈여겨보아야 보이고 자세히 보니 보통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이름이 민망하다. 크기로도 모양으로도 도저히 유추할 수 없는 ‘큰개불알풀’! 일본 이름에서 유래했다나, 어쨌다나. 아무려면 어때, 예쁘고 사랑스러운 걸.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덕택(?)에 저 작은 꽃들을 볼 수 있다니. 낮은 곳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는 저 미물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다니. 시인 반칠환이 노래한 노랑제비꽃은 실물로는 보지 못했다. 그 꽃이 아니고 저 꽃이면 또 어떠리. 시인의 눈에 저 꽃이 들어왔다면 저　꽃으로 저렇게 예쁜 시를 쓰지 않았겠는가. 시인의 시 도처에 넘쳐나는 생명 사랑이 민들레꽃, 큰개불알풀이라고 비껴갔겠는가. 노랑제비꽃 <span style="padding-left:420px">반칠환</span>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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