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는 불행했을까 김영국  (Homepage) 2020-06-02(화) 20:19:01, 15333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혹은 꾀 많은) 인물이다. 신을 속이고 농락한 죄로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산기슭의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이다. 그런데 이 바위를 정상에 밀어 올리는 순간 바위는 떼굴떼굴 계곡까지 굴러 내려가 버린다. 그러면 시시포스는 터덜터덜 내려와 다시 밀어 올린다. 이 힘들고 의미 없는 짓을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 시시포스의 운명이다.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여 직장에서 판에 박힌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한다. 이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일주일 단위로 보아도 그렇다. 월요일에 바닥에 있는 바위를 끙끙거리며 밀어 올려 금요일에 겨우 정상에 올린다. 그러면 그 바위는 굴러 내리고 토요일 일요일에 내려와 월요일이면 그 바위를 다시 밀어올리기 시작한다. 일 년 단위로 보거나, 한 생을 돌아보아도 대충 우리는 저 시시포스의 형벌과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시시포스의 고역은 수동적이다. 자발성이 없다. 의미도 없다. 그래서 보람도 없다. 그 형벌은 기한이 없다. 그곳이 저승이니 죽을 수도 없다. 무한반복이다. 그러니 희망이 없다. 분수를 모르고 신을 농락한 죄가 아무리 크고 괘씸하다 해도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다. 시시포스는 불쌍하다. 그리고 불행하다. 그의 형벌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인간도 불쌍하고 불행하다. 과연 시시포스도 인간도 불쌍하고 불행하기만 할까. 일찍이 알베르 카뮈는 그의 부조리 3부작 중 하나로 꼽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를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그는 시시포스에게서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여 신과 맞선 깨어있는 시시포스가 부당한 형벌을 순순히 수용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주어진 형벌을 즐기면서 신을 경멸한 시시포스는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다. 스웨덴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70대에 글쓰기에 회의를 느껴 절필 상태에 있었다. 이미 40권의 책을 낸 다작의 그는 이제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작업실 근처에 꽃집이 있었다. 직원을 5명이나 두고 있는 주인 남자의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 네시에 꽃 시장에 가서 꽃을 사온다. 낮에 꽃 가게를 지키다가 저녁 아홉시에 귀가한다. 틀에 박힌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딱하게 여긴 작가가 주인을 불러 앉혔다. “자네는 시시포스가 됐구먼.” 그러고는 시시포스에 대해 얘기했다. 그 다음날부터 주인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다. 가게 일은 직원에게 맡기고 그는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다가 카페에 주저앉아 차를 홀짝거렸다. 기특하게 바라보는 작가에게 그가 겸연쩍게 말했다. “시시포스가 되지 않으려고요.”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다시 가게 일에 매달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작가를 불러 앉히고 말했다. “선생님은 시시포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시포스의 행위는 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쁨이고 자비입니다.” 크게 깨달은 작가는 곧장 작업실로 돌아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다시 쓸 수 있을까>이다. ‘아이디어 떠올리기 → 시나리오 쓰기 → 스토리보드 그리기 → 촬영하기 → 편집하고 녹음하기’ 영화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어느 영화감독은 지난 20년 동안 이 일을 일곱 번 반복하며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 감독은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승리자인가, 패배자인가. 이 반복은 그에게 형벌인가, 축복인가. 봉준호 감독의 얘기는 계속된다. “앞으로도 위의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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