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기적들3-밥 김영국  (Homepage) 2020-06-17(수) 19:57:46, 15701

우리의 현대사를 부끄러운 역사로 몰아가는 역사가들이 역사학계의 주류가 되었다. 청소년들은 그들이 집필한 교과서를 배우고 있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고 키워온 이승만 박정희를 부정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학적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다른 나라는 그들의 역사를 미화하여 청소년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는데, 이들은 남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해마지않는 우리의 현대사를 오로지 진영의 이익을 위해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굶주리고 헐벗어온 국민들이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절대빈곤의 남루를 벗어던지고 풍요의 기반을 닦았는데 그 역사가 왜 부끄러운가. 도둑질도 구걸도 아닌 우리들의 당당한 노력으로 얻은 결실이 아니던가. 그들은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엉뚱한 트집으로 자랑스러운 현대사를 헐뜯고 있다. 언필칭 인권 운운하는데 인권 가운데 으뜸은 생존권이다. 생존의 첫걸음은 말할 것도 없이 먹는 것이다. 밥이다. *밥 ‘아이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미스터트롯’에서 14살의 정동원군이 1차 경연에서 ‘보릿고개’를 불렀다. 저 나이에 보릿고개를 알기나 할까 걱정했는데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던 원곡 가수 진성이 느닷없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 노래의 가사를 직접 지은 진성의 어린 시절을 정동원이 제대로 표현했던 것이다. 노랫말의 내용은 가수 진성의 나이를 감안할 때 1970년대 초의 우리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 많은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문순태의 수필 <밥 한 사발 눈물 한 대접>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한다. 1941년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걸로 보아 당시 농촌 평균 이상 가세는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배고팠던 시절, 밥 한 그릇은 행복의 최대 단위였다. ........ 60년대 중반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이야기다. 한번은 배가 너무 고파 친구한테 밥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신촌에서 미아리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는 시내버스 차표 한 장 살 돈이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 밥 한 사발은 눈물 한 대접, 행복 한 그릇이었다.’ 나는 한때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의식주’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 당연히 ‘밥’이 ‘옷’보다 먼저 나와야 한다고 우기고 싶었다. 밥걱정보다 체면 먼저 생각하는 양반들이 그랬을 거라고 혼자 성토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밥이 절실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인사는 으레 “진지 드셨습니까.” “밥 뭇나”였다. 설사 못 먹었더라도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처지이면서 그게 가장 큰 배려였던 것이다. 그때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 두 가지가 있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하고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것이다.’ 하얀 쌀밥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새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따님이 놀랍게도 우리 반에 들어왔다.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그 서울 소녀였다. 걔는 우리를 한 순간에 촌놈 촌년으로 만들어버렸다. 점심시간이었다. 학교에 붙은 사택에 살면서 도시락은 왜 싸왔는지. 황금빛 양은 도시락은 앙증맞고 눈부셨다. 뚜껑을 여는데 하얀 쌀밥이 드러났다. 우리는 그때부터 우리의 투박한 ‘벤또’가 쪽팔렸고 시커먼 보리밥이 창피했다. 교사가 되어 혼식을 장려하며 학생들의 도시락 검사를 할 때까지 그 아린 기억이 남아있었다. 변덕대장인 나는, 고향에서 쌀을 가져오는데도 요즘 하루 두 끼만 쌀밥을 먹는다. 그것도 꿈의 하얀 쌀밥이 아닌 현미 등 잡곡이 들어간 거무튀튀한 밥을 먹고 있다. 손주들은 하나같이 어린 시절 밥을 잘 안 먹어 부모의 애를 태우며 자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지금은 어떻게 배를 채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을 뺄까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조선조 임금님들보다 잘 먹고 산다고. 나라에서는 남아도는 쌀을 보관하는 데 일 년에 5000억원을 쓰고 있단다.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가 70년대 초의 얘기라면 50 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우리의 밥상에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어쩌다 한 번씩은, 일상이 돼버린 이 기적을 떠올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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