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김영국  (Homepage) 2020-09-01(화) 20:00:40, 16645

금정여고 근무 시절인 90년대 초에 선생님들이 너도 나도 승용차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끝물에 거기에 합류했다. 그 당시 선생님들의 화제는 자동차와 운전에 관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화제는 자동차 사고였다. 누가 접촉 사고라도 냈다 하면 우루루 모여들어 갑론을박했다. 왕초보인 나도 빠짐없이 끼어들었다. 사고 처리 요령 등 정보를 얻어두자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새 차의 흠집과 예상 견적 등을 확인하고 돌아올 때 내 심리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안타깝다는 생각 아래에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음흉한 기쁨 같은 감정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내 속에 나도 몰랐던 악마가 있었던가? 동료의 불행을 두고 이 따위 감정을 느끼다니. 자괴하고 자책했지만 사고 소식만 들으면 또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어 동료의 불운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인 듯한데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샤덴프로이데’라는 심리학 용어를 만나게 되고, 그 심리가 나만의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능 비슷한 보편적인 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 Schaden(손실 고통)과 Freude(기쁨)라는 상반된 뜻을 가진 두 단어의 합성이다. 이런 단어가 없었던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에서는 이 독일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뜻하는 심리학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이 말에 가까운 국어로는 ‘쌤통’, ‘고소함’. ‘잘코사니’가 있으나 이들은 나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 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샤덴프로이데보다 좁다. 이 불편한 감정을 확인한 심리학계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를테면 눈길을 가다가 꽈당 넘어지는 장면, 지나가는 차가 오물을 튀겨 옷을 버리게 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조사했다.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다들 남의 고통을 기뻐했고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엔 학력, 남녀, 종교 유무 등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분에 따라 기쁨의 정도가 달랐다. 근사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넘어지거나 피해를 입으면 노약자나 노숙자가 당했을 때보다 훨씬 큰 기쁨을 느꼈다. 일본에서는 대학 내의 동료 학생끼리 실험을 한바 선망의 대상, 질투의 대상 또는 라이벌이 당하는 고통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느낀 기쁨이 남보다 더 컸다면, 내가 더 음흉해서가 아니고 사고를 낸 선생님들이 모두 나보다 운전 선배였기 때문일 것이다.(선생님의 실수를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하던가.) 그런데 이 자리에서 고백할 일이 있다. 몇 개월 뒤 나는 비 오는 남해고속도로 밤길에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차는 폐차 직전이었다. 내게 보험사를 소개한 친구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핵폭탄급 기쁨을 줄 수는 없었다. 나의 이 쪼잔한 심리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 연결될 것이다. 샤덴프로이데의 역방향이다.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라는 심리를 이르는 용어는 없는가. 이도 본능에 가까운 보편적 감정일 텐데 말이다. *뱀발: 문득 이 음습한 심리 현상을 악용하여 민심을 조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장난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잔머리에게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몇 가지 예를 살펴본다.(무식쟁이의 한낱 가설일 뿐이다.) # 독일 나는 독일의 히틀러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차대전의 참담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비교적 이성적이라는 독일인들이 어떻게 히틀러에게 나라의 운전대를 맡겨놓고 그렇게 열광했을까. 히틀러의 연설, 괴벨스의 선동기술을 감안하더라도 나라가 나락으로 내닫고 있는데 투표마다 절대다수가 나치를 지지한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제야 이런 가설이 떠올랐다. 유대인 학살로 독일인들을 샤덴프로이데에 취하게 하여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은 아닐까. 머리 좋고, 돈 잘 버는 유대인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샤덴프로이데의 희생양으로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라면 개연성 있는 추측이 아닐까. # 중국 느닷없는 대약진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피해는 너무 컸다. 하늘 같은 존재 모택동이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던 모택동이 이번에는 느닷없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홍위병이라는 완장을 채워주고 그들에게 의식개혁운동을 주도하게 했다.(<허삼관 매혈기>에서 이 운동의 허상을 보았다.) 나름 잘 나가는 사람들을 주자파 또는 반동으로 몰아 처단할 때 철없는 젊은이들의 심리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 인민들은 공포와 함께 샤덴프로이데를 느끼지 않았을까. 결국 혁명의 귀재이자 통치의 둔재 모택동은 권좌에 복귀했다. # 북한 북한도 공포심과 샤덴프로이데로 주민들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 수단이 인민재판이었다. 피고는 지주 마름 등 기득권층이고, 재판관은 머슴이나 소작인들이었다. 거드름 피우던 부르주아지를 꿇어앉혀놓고 구박받던 프로레타리아가 재판관이 되고 배심원이 되어 생살여탈권을 행사했다.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 통쾌하지 않았을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지상낙원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김일성은 우상이 되고 인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위의 나라들과 나란히 놓는 것은 좀 그렇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정상적인 나라에서도 샤덴프로이데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배 고픈 것(부족)은 참아도 배 아픈 것(불균)은 못 참는다는 우리가 아닌가. 어쩌면 우리에게 샤덴프로이데의 효과가 남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부를 예로 들어본다. 집권 초기에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반대진영의 고위인사들을 차례차례 소환했다. 이때는 피의자의 인권이니, 무죄추정의 원칙이니, 피의사실 공개 금지 따위는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다. 국군 장성에게 병사복을 입히고 수갑을 채워 카메라 앞에 세웠다. 뒤에 무혐의로 판명되기도 하고 한 분은 자살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 대법원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미친 굿판에서 자기 진영은 샤덴프로이데를 만끽하며 결속을 다졌다. 적폐청산에 피로감을 보이자 집권 후반기에는 강남(가진 자)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갔다. 강남과 강북, 다주택자와 무주택자로 편을 갈랐다. 강남 거주자, 다주택자에게 벌금에 버금가는 세금을 때린다. 교묘하게 편을 갈라 소수는 조지고 다수에겐 샤덴프로이데를 선사한다. 이런 정치공학으로 재미를 보았지만, 정책은 실패하고 나라는 멍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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