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예찬 김영국  (Homepage) 2020-10-04(일) 15:37:32, 16931

솔직한 사람이 싫다.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끼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싫다. 이런 정직한 사람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꺼려지고 대인기피증이 깊어진다. “와 그래 얘비노(야위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듣고 있는 걱정이다. 주로 고향의 어르신들한테 많이 들었다. 그래서 ‘살찌는 것’이 나의 평생소원이 되었다. 이 한은 끝내 못 풀고 갈 것 같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니도 늙네.” “백발이 성성하네. 마이 늙었다야!” 60대에 많이 들은 탄식이다. 40대까지 동안 내지 ‘비교적 총각’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저 탄식은 듣기가 심히 불편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 확인해오는 바를 굳이 그렇게, 상처에 고춧가루 뿌리듯, 지적하는 심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구, 많이 고생했나 보네.” “소식은 들었네만 몰라보게 상했네.”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 돌아온 70대 들어서 듣는 위로의 말이다. 결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아파보지 않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정직은 언제나 미덕인가. 솔직한 성격은 무조건 좋은 성품인가. 파울로 코엘료는 노년을 ‘참 좋아 보입니다.’라는 인사를 듣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도 때에 따라서는 ‘착한 거짓말’-‘아부’의 미덕을 인정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아부는 마음에 없는 칭찬이다. 뇌물을 주거나 받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아부를 하거나 받았다고 벌하지 않는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을 왜 사람들은 백안시하는가. 마음에 없거나 좀 과장했더라도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기운을 돋우는데 어째서 나쁜가. 일찍이 공자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경계했다. 그 영향이 컸다. 예쁜 말씨,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왜 싫어했을까. 덩달아 ‘감언이설’(甘言利說)도 덤터기를 썼다. 달콤한 말을 듣는다고 혈당이 올라가는가, 충치가 생기는가. 이로운 말 그 자체가 뇌물이라도 되는가. 나는 조광조를 읽으면서 딱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 왜 가끔 중종 앞에서 교언영색, 감언이설을 하지 않았을까.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면서 약간의 아부를 곁들여 추진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부는 필요하다. 미장원에 다녀온 아내가 “좀 이상하지?” 물었을 때 솔직하게 “응” 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잘라버린 머리를 붙일 수도 없고,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는데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겠는가. 모처럼 정성들여 만든 반찬을 먹으면서 아부성 리액션을 하지 않는 남편은 평생 김치와 된장만으로 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고받는 대화를 관찰해보라. 아부의 연속이다. 손주와 할머니의 대화도 역시 아부 경연장이다. 아부는 화목한 가정의 필요조건이다. “너무 잘 어울립니다. 아버님은 키가 커서 그 옷이 딱입니다. 맞춤 같습니다.” “어머님 머릿결은 백만 불짜립니다.” “피부를 어떻게 관리하셨는데 이렇게 곱습니까. 부럽습니다.” 이 말들이 진실이겠는가. 아부라는 걸 점원도 알고 고객도 안다. 알면서도 고객은 기분이 좋아진다. 그 아부에 끌려 옷을 사거나 그 숍의 단골이 된다. 한 회사의 운명은 영업팀에 달려 있다. 영업사원의 가장 큰 무기는 아부의 기술이다. 디자인 팀이나 신제품개발 팀에서 아무리 좋은 상품을 내놓아도 영업사원들의 아부가 들어가지 않으면 시쳇말로 말짱 황이다. 할머니의 아부를 듣고 손주는 자라고, 손주의 아부에 할머니는 살맛이 난다. 선생의 아부에 학생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제자의 아부에 선생은 보람을 느낀다. 의료진의 아부 한 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점원과 영업사원들의 아부에 힘입어 회사가 잘 돌아가고,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 내가 던진 아부 한 마디에 한 사람의 기분이 좋아져 또 다른 사람에게 아부를 한다.  아부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고, 차가움을 덥히는 난로다. 아부는 서걱이는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윤활유고, 기진맥진을 원기왕성으로 바꾸는 보약이기도 하다. ♬누가 아부를 야비하다 했는가 ♬누가 아부를 야비하다 했는가       -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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