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손녀의 국어 질문 김영국  (Homepage) 2021-02-07(일) 08:36:40, 16497

“할아버지, ‘내 가방’에서 ‘내’가 한 단어입니까, 두 단어입니까?” 엄마에게 물은 질문이 내게로 토스되어왔다. 똑똑한 놈인데 이런 질문을 하다니.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한 단어지. 근데 그걸 왜 묻는데?‘ “국어선생님이 ‘내’는 ‘나의’의 준말이기 때문에 두 단어래요 그래서 100점 못 받았어요.”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준말은 줄기 전의 단어로 돌아가서 단어의 개수를 헤아려야 하는 것일까. 그럼 ‘괜찮다’ ‘귀찮다’는 몇 단어인가. ‘그걸 몰라?’에서 ‘그걸’, ‘그러는 게 아니야’에서 ‘게’는 대체 몇 단어인가.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역시 머뭇거렸다. 한 달쯤 뒤에 또 전화로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여자’의 ‘여’의 음운은 몇 개예요? 이중모음은 하나로 치는지 둘로 치는지 헷갈려요.” 이번에는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 경력이 손녀에게나 딸내미에게 무색해졌다. 네이버를 뒤적였다. ‘음운의 개수’를 검색했더니 질문과 답변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중학생뿐이 아니었다. 공무원, 군무원 등을 준비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대체 이게 뭐라고 다들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쭉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군무원 기출문제에 이 문제가 나와 있었다. ‘꿰뚫고 지나갔다’의 음운이 몇 개인가를 묻고 있었다. 그것이 중학교 문제집에까지 침투해온 모양이다. 전직 고등학교 국어선생도 헷갈리는 문제를 왜 중학교 1학년이 공부해야 하는가.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선생님은 문제집에 이 문제가 나오니까 다룰 것이고, 문제집 만드는 사람은 이런 문제가 실제로 출제되니까 자꾸 더 어려운 문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결국 책임은 출제자에게 귀착된다. 출제를 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 문제를 출제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그래서 국어 사용능력이 어떻게 신장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느 해 순경 공채 시험의 국사에서 연도순으로 나열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1, 팔만대장경 완성 2. 삼국유사 편찬 3. 향약구급방 간행 4.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이런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모든 역사적 사실의 연대를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력이 모자라는 나는 학생시절 이런 유형의 문제를 제일 싫어했다. 같은 연도순이라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처럼 인과관계가 있는 사건을 보기로 내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선후관계 문제는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인과관계를 물으면 역사를 이해하고 통찰하게 할 것이다. 서울 유명 영어유치원의 입학시험으로 철자법 부분에서 dehydrate가 출제되었다. 특수층의 학부모들이 종전의 문제가 변별력이 없다며 거세게 항의하는 바람에 이런 문제를 내었다는 것이다. 5~6세의 애들이 이런 단어를 익히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저 기출문제 하나가 얼마나 많은 애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을지 출제자는 반성하고 있을까. 아니 알고나 있을까. 우리 수능 영어문제 5개를 영국의 영어교사에게 문제당 50초씩 주고 풀어보라 했더니 1~2 문제를 풀었다. 지문 속의 satiety, hedonic 등의 단어는 발음도 뜻도 잘 모르더란다. 이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우리나라의 고졸자들은 영어사용능력이 그만큼 탁월할까.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며, 현지 영어를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으며, 자기 생각을 영어로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을까. 잘못된 문제가 학생들의 공부를 오도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학생은 선생님의 출제경향에 맞춰 공부하고, 교사는 수능문제를 보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출제자는 이 문제가 학생들의 공부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특히 수능이나 임용고시 등의 문제는 일단 출제되면 기출문제가 된다. 두고두고 다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출제된 문제는 족보가 되어 대대로 유전된다. 개중에는 인근 학원의 교육내용에도 반영된다. 개념 없는 출제자의 문제 하나가 본의 아니게 학생들의 머릿속에 쓰레기 한 뭉텅이를 집어넣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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