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은 악인만 저지르는가 김영국  (Homepage) 2021-03-09(화) 20:27:29, 16696

#1. 복종 실험 1961년 예일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권위에 의한 복종’ 실험을 했다. 지역신문에 ‘징벌이 학습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며 실험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 희망자를 학생과 교사 그룹으로 나누었다. 진짜 피험자는 교사 역을 맡게 하고, 학생 역은 미리 뽑아놓은 실험보조에게 맡겼다. 학습한 내용을 교사가 질문을 하고 학생이 대답을 하게 했다. 학생이 오답을 하면 교사는 그 징벌로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주게 했다. 15V에서 시작하여 오답 횟수에 따라 15V씩 높여가도록 했다. 물론 전선은 연결되지 않았고 교사가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학생은 연기를 했다. 과연 피험자(교사)가 몇 V까지 스위치를 누를까, 최종단계 450V까지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를 체크했다. 전압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의 신음, 항의, 비명소리가 높아지고 300V(위험표시)를 넘어서면서 기절 시늉까지 했다.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피험자가 있으면 괜찮으니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과연 몇 명이 최종단계인 450V 단추를 눌렀을까. 밀그램은 개인심리학 프레임에 익숙한 정신과의사들에게 예측해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이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려 67%가 450V 단추를 눌렀다.(밀그램은 실험의 비윤리성으로 징계를 받았다.) #2. 교도소 실험 1971년 스탠포드대학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실험을 기획했다. 시급 15달러라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실험참여자를 모집했다. 심신이 건강하고 고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남자 24명을 선발하여 무작위로 교도관과 죄수로 나누었다. 교도관은 경찰복, 죄수는 수의를 입혀 2주간의 실험에 들어갔다. 첫째 날은 웃고 떠들며 넘어갔다. 둘째 날부터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도관은 폭력성을 띠게 되고 죄수는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심야에 교도관이 군기를 잡겠다며 불을 켜고 죄수를 깨우자 죄수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교도관은 소화기 등을 동원해 과격하게 그들을 진압했다. 그 과정에 죄수 한 명이 발작을 일으켜 귀가 조치했다. 제3일에 면회 온 부모가 실험광경을 보고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도 교도관들의 가혹행위는 심해졌다. 독방에 가두기도 하고, 옷을 벗겨 성적 학대를 가하기도 했다. 드디어 죄수들은 탈옥을 모의하게 되고 이에 맞서 교도관들의 고문은 더 심해졌다. 실험 5일차에 짐바르도의 여자친구가 이 상황을 보고 실험중단을 요구했다. 2주 일정으로 기획된 실험은 결국 5일 만에 중단되었다. (상황이 예상 밖으로 진전되고 있는데도 정작 짐바르도는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스라엘 비밀경찰은,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홀로코스트 주범 아이히만을 15년 만에 체포하여 이스라엘의 법정에 세웠다. 세기의 재판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600만 명의 동포를 잃은 이스라엘 국민들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아이히만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공무원으로서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 것이 어째서 죄가 되느냐고 항변했다. 중계를 지켜본 국민들은 그 후안무치한 언행에 치를 떨었다. 아르헨티나 이웃들의 증언은 뜻밖이었다. 그는 근면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이면서 평범한 이웃이었다. 정밀하게 검사한 정신과의사의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부문에서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유대인 출신 세계적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이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독일에서 구사일생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이 철학자에게도 이 재판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이 재판에 대한 그의 보고서 제목이다. 그는 아이히만의 죄를 ‘생각하지 않은 죄’로 규정했다. 여기서 그는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악인은 처음부터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도 무사유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끔찍한 악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죄는 미워하되....... 악행의 원인이 개인의 성격인지, 아니면 그 개인이 처한 환경인지는 심리학의 오랜 논란거리다. 끔찍한 사건이 언론에 나오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악행의 주인공을 질타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며 돌을 던진다. 그런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위의 사례들은 낯설고 불편하다. 범인의 성격을 악행의 원인으로 봐버리면 간단한데, 원인을 환경에서 찾으려들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분노의 대상도 모호해진다. 인간의 뇌는 게을러서 복잡한 걸 싫어한다. 게다가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는 더욱 싫다. 사회심리학의 출발이 늦었고 그만큼 우리에게 덜 익숙한 탓도 있으리라. 예비군복을 입으면 정장 차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언행을 서슴없이 해본 경험은 없는지. 흥분한 군중 속의 일원이 되었을 때 혼자 있을 때에는 생각도 못 할 과격한 언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은 없는지.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지금 우리는 일상으로 목격하고 있다. 좌표만 설정되면 무자비하게 공격하여 초죽음으로 몰고 가는 자칭 ‘대깨문’들.의 집단 행패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 집이나 직장에서는 다 따뜻하고 건전한 사람들이다. 특정 조건에서 표변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450V 단추를 누른 사람이 67%였고, 가혹한 고문을 서슴지 않고 행한 교도관도 다 심신이 건강한 우리 이웃이었다. 심지어는 아이히만마저도 자상한 가장, 착실한 직장인이었다지 않는가. 결국 우리도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면 생각지도 못할 악행을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나 아렌트는 그 방지책으로 ‘생각’을 주문했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가. 윗사람의 한 마디에 통계를 조작하고, 한밤중에 국가 주요 문서를 수백 건 삭제했다. 그 일로 그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말도 안 되는 자리에 말도 안 되는 목적으로 공항을 짓겠다고 하니 관련 공무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은 나랏돈 얼마가 날아가고, 그것을 방조한 행동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잘 안다. 그들이 누구인가. 다 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던 모범생들이다. 정치꾼들이야 본디 그렇다 치더라도 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을 향해 한참 흥분했는데 문득, ‘내가 저 라인에 있었다면’ 생각하니 머쓱해졌다.   그리고 만약 특정 범행의 원인이 순전히 범인의 성격 탓이라고 치자. 그 성격은 그 범인 책임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의 결과이거나 유아기의 트라우마 탓이 아닐까. 지금까지의 연구와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개인의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학자는 차라리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 낫다며 성격 개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민의 공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인이 양모를 생각해보자. 심리분석 결과 사이코 패스의 기준점에 근접하는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사이코 패스의 특징은 아무 죄의식 없이 반사회적 행동을 자행하며, 타인의 아픔에 연민 내지 공감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그런 환자를 건강한 사람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 그런 사람을 가려내지 못하고 방치한 우리 사회에는 아무 책임도 없단 말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조상들의 가르침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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