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 시7 김영국  (Homepage) 2021-08-01(일) 19:43:14, 17224

나는 의자를 걸상으로 만났다. 학교에서, 그것도 4학년쯤 돼서야, 등받이도 없고 3~4명이 함께 앉는 다인용 널빤지 걸상에 처음 걸터앉아보았다. 그 무렵 앉은뱅이책상이 우리 집에 들어와, 내가 외지로 나갈 때까지 작은방에 있었으니, 그때까지 집에는 의자가 없었던 셈이다. 마루나 평상에 걸터앉는 것 말고는 다리를 수직으로 떨어뜨리고 앉는 자세는 낯설었다. 투박한 걸상이 세련된 의자로 변신하면서 의자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회전의자’라는 가요가 있었다. 출세의 상징이었다. 이제 말단사원도 회전의자 빙글빙글 돌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음식점은 한참까지 방석(어느 대통령이 ‘자부동’이라 하여 화제가 된 일이 있다.)집이 대세였다.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술잔을 돌리고, 흥이 오르면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빈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제 그런 집은 사라지고 있다. 외식을 하거나 모임을 주선할 때, 의자 없는 집은 기피 대상이 되었다. 맨바닥에 앉을 때도 힘들고, 앉아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특히 일어설 때 곳곳에서 신음 내지 비명 소리가 들린다. 방석 시절이 그립긴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나이가 드니 의자 없는 생활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산책로나 공원에는 군데군데 벤치가 마련돼 있다. 반갑고 고맙다. 벤치에 느긋이 앉아 주위의 풀꽃을 보고, 하늘의 구름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내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집에 하나도 없던 의자가 지금은 좁은 집 안을 의자가 다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책상 앞, 화장대 앞에도 있고, 식탁에도 있고 거실에는 소파도 있다. 지금은 안마의자까지 모셔올까 생각 중이다. 버스나 지하철의 의자는 또 어떤가. 빈자리 하나를 노려 암중탐색 호시탐탐, 뇌와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엔진 소음을 덮을 지경 아니던가. 어쩌면 인생은 의자 내주고 차지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살아오면서 의자 몇 개나 만들어 내놓았을까. 그 의자에 잠시라도 기대어 기운을 차린 이는 몇이나 될까. 시 속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말이, 죽비가 되어 화들짝 나를 깨운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어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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