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전설 김영국  (Homepage) 2021-08-28(토) 19:54:34, 17428

솔개 나이 마흔쯤 되면 뒷방 늙은이 처지가 된다. 부리는 휘어져 먹이를 쫄 수가 없다. 발톱은 부러지거나 닳아빠져서 개구리 한 마리 낚아챌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날개다. 묵은 깃털이 무거워 창공을 힘차게 날거나 목표물에 소리 없이 순식간에 다가가기가 힘들다. 결국 젊은 솔개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남긴 먹이 부스러기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다. 이 무렵 솔개는 두 갈래 길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한다. 이대로 늙어가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냐, 처절한 수련으로 환골탈태하여 새 삶을 시도할 것인가. 담대하게 후자를 선택한 솔개는 아무도 모르게 무리를 벗어나 산 정상으로 간다. 첫 번째 과제는 부리다. 부리로 바위를 쪼고 또 쪼아 부리를 없애버린다. 피가 낭자한 바위에서 새 부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새 부리가 다 자라면 두 번째 과제에 도전한다. 새 부리로 발톱을 하나 하나 다 뽑는다. 새 발톱이 자라는 동안 세 번째 과제를 시작한다. 온 몸의 깃털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새 깃털이 돋아나 다 자라면 드디어 수련이 끝난다. 솔개에게 제2의 생이 주어진 것이다. 6개월 수행의 대가는 30년의 시간이다. 그렇게 솔개는 일흔 무렵이 되면 천수를 다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등에서 몇 번 읽은 솔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전혀 근거 없는 거짓말이란다. 솔개의 생명은 20년 남짓이다. 새의 부리가 다시 날 수도 없고, 그 예민한 부위가 부러지면 출혈로 죽게 될 뿐 아니라, 그렇게 오래 굶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개는 육식동물이긴 하지만 대개는 죽은 동물의 시체를 먹으며 살고, 맹금류 가운데서는 가장 볼품이 없을 뿐 아니라, 전투력도 가장 떨어진다고 했다. 심지어 기러기와의 싸움에서 지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솔개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독수리는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솔개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맹금류였다. 놀라운 것은 날개를 편 채 그대로 공중에 한참 동안 멈추어있는 것이었다. 그런 비행체는 연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아닌 게 아니라 한자 鳶은 솔개 연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멈추어 있다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상으로 내리꽂혔다가는 뭔가를 낚아채어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놈이 병아리를 그렇게 잡아간다고 경계했다. 심지어는 동생을 맡기고 일터에 가실 때는 솔개라는 놈이 어린 아이도 낚아간다며 잘 보라고 겁을 주기도 했다. 이제 고향에 가도 그 솔개를 볼 수가 없다. 멸종 위기 동물이 되었단다. 그건 그렇고, 공연한 호기심으로 솔개의 진실을 알아버린 것이 아프다. 그 신비로웠던 새가 실은 주로 썩은 고기를 먹고 산다니. 그 무서웠던 새가 기러기에게도 못 이기는 새라니. 동요 <소리개>(본디는 표준어였다가 ‘솔개’에 밀려 버렸다.)에 솔개에 대한 어린 시절 우리의 양가감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소리개가 빙빙 높이 떴구나 높이 떴구나 우리 동네 병아리들 빨리 빨리 숨어라......‘ 가수 이태원의 노래 <솔개>는 가사가 범상치가 않다. 길고 심오하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부르기를 포기했다. 첫 소절과 끝 소절만 부를 수 있다. 말에 부대꼈던 젊은 시절엔 첫 소절이 좋았는데, 솔개의 진실을 알고 난 지금은 끝 소절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 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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