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옥중 성경 송길원  (Homepage) 2023-05-03(수) 06:59:00, 41903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성경에 이어 노태우 대통령의 성경이 기증되었다. 2번째 기증된 노대통령의 성경은 옥중성경이다. 당시 교도소에는 지존파도 수감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치소 안에서 박효진 교도관에 의해 예수를 만난 지존파는 마지막 장기기증과 함께 1995년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남긴 영치금 7만여원을 놓고 고민하던 교도관들은 그 돈으로 성경을 사서 노대통령께 선물해드렸다. 말 그대로 ‘지존이 지존(至尊)에게’ 바친 성경이 되었다. 노대통령은 건네받은 성경책을 수감 중 두 번이나 읽었다. 노대통령의 따님 노소영관장은 말한다. “아버님은 매일 하루를 정리하는 노트를 남기셨고 자신의 신앙 고민과 함께 성경 이야기를 많이 쓰셨어요.” 나는 노대통령이 남긴 그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노대통령이 가장 감동을 받았을 성경구절도 궁금했다. 순간 스쳐 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노대통령의 아들 노재헌변호사(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가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무릎을 꿇은 장면이었다. 노원장의 무릎 참배를 보면서 역사의 명장면 하나를 떠올렸다.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이었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헌화를 하던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총리는 무릎을 꿇는다. 폴란드 총리는 이날 브란트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다. 헝가리의 뉴스 캐스터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다” 노변호사는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사과는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듯이 저 역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겁니다.” 노원장이 민주묘지를 찾기 전 어머니 김옥숙여사가 8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당일, 이곳을 찾았었다고 한다. 노원장은 노태우대통령이 이미 어머니와 함께 다녀오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어쩌면 먼 훗날 어떤 역대 대통령도 못했던 대한민국에 값진 유산-북방외교, 대만과 수교회복 등-에 이은 참회와 용서, 치유의 가치를 심은 아들로 기억될 것이라 여겼다. 나는 노대통령의 손때 묻은 성경을 받아들면서 역사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게로 느껴졌다. ※ 이승만 대통령의 성경을 공개하던 날, 노소영관장도 자리를 같이하여 노태우대통령의 성경을 기부했다. 결국 대통령의 성경을 대통령의 가족이 맞이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노소영관장이 성경책 앞에 말없이 무릎을 꿇었고 우리는 그와 어머니 김옥숙여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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