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벨이 전화 발명가가 된 사연 송성수  (Homepage) 2020-10-02(금) 12:45:52, 9432

이번 추석 연휴 때 전화 많이 하셨는지요? 아래는 제가 네이버 지식백과의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코너에 연재했던 전화에 관한 글입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세상을 바꾼 뱔명과 혁신’ 바로 가기 [전화] 벨이 전화 발명가가 된 사연 전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텔레폰(telephone)은 ‘멀리’를 뜻하는 텔레(tele)와 ‘소리’를 의미하는 폰(phone)을 합성한 것이다. 전화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 세계일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모 재벌의 광고는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벨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1876년 2월 14일에 벨은 전화에 대한 특허를 엘리사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보다 몇 시간 빨리 제출했고, 그 결과 벨은 전화의 발명자로 후대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레이는 일반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림 1> 벨의 전화기에 대한 광고(1936년) 발성법 연구에서 시작된 전화 벨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농아를 돕는 일에 종사해 왔다. 벨의 아버지는 1864년에 농아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 시화법(visible speech system)을 개발하기도 했다. 발음할 때의 입술이나 혀의 움직임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발음법을 습득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벨은 인간의 음성과 그 기능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벨의 가족은 1870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시화법을 바탕으로 농아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벨이 전화를 발명하게 된 계기도 보스턴 농아학교에서 발성법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단을 찾던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는 공기의 진동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 소리의 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농아들의 교육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전류를 이용하여 소리를 재생하는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림 2> 1871년에 벨이 보스턴 농아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의 사진. 제일 윗줄의 오른쪽이 벨의 모습이다. 당시에 벨은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가정교사 노릇을 했는데, 그의 제자로는 조지(Georgie Sanders)와 메이블(Mabel Hubbard)이 있었다. 당시에 농아에게 별도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집안은 상류 계층이었다. 조지의 아버지인 토머스 샌더스(Thomas Sanders)는 부유한 사업가였으며, 메이블의 아버지인 가디너 허버드(Gardiner Hubbard)는 매우 활동적인 변호사였다. 두 사람은 벨의 연구 계획을 듣고는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고, 1875년 2월 27일에는 소위 ‘벨 특허 조약(Bell patent association)’이 맺어졌다. 벨은 보스턴에 작업실을 꾸민 후 유능한 전기기술자인 왓슨(Thomas Watson)을 고용했다. “미스터 왓슨, 이리와 보시오.” 그러던 중 1875년 6월 2일에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벨과 왓슨은 복도를 사이에 둔 다른 방에 있었고, 왓슨은 송신기에서 소리를 발생시키고 벨은 수신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왓슨은 송신기 중의 하나가 멈추어 서자 이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고 진동판을 잡아당겨서 퉁겨 주었다. 그 때 전선의 반대편에 있던 벨은 ‘퉁’하고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송신기의 진동판이 퉁겨지면서 전선에 전류가 유도되었고, 이 때 발생한 전류가 전선의 반대편 끝에 도달한 후 벨이 조율하던 수신기의 진동판을 흔들어서 ‘퉁’하는 소리를 재생한 것이었다. 그 후 벨과 왓슨은 전화기를 개발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소리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해 자석이 끌려갔다 멀어졌다 하면서 진동을 하고, 이 진동이 수신기 끝에서 소리로 재생된다는 원리였다. 전화의 발명이 눈앞에 다가오자 1876년 2월 14일에 벨은 자신의 설계도와 설명서를 바탕으로 전화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에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의 그레이는 전화에 대한 특허권 보호 신청서(caveat)를 제출했다. 1876년 3월 7일에 미국 특허청은 벨에게 전화에 대한 특허를 부여했다. 특허명은 <전기 전동을 일으켜 목소리나 그 밖의 소리를 전신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구>이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3월 10일에 벨은 전화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 벨은 전화기를 통해 “미스터 왓슨, 이리와 보시오. 볼 일이 있소(Mr. Watson, Come here! I want you.)”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후에 ‘세계 최초의 전화 메시지’로 간주되었고,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그림 3> 1876년 3월 7일에 특허를 받은 벨의 설계도 벨은 사기꾼인가? 그러나 벨이 전화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의 과학전문기자로 2008년에 ≪텔레폰 갬빗(The Telephone Gambit)≫을 발간한 슐만(Seth Shulman)의 견해를 들 수 있다. 그는 특허신청서 사본, 특허심사관의 진술, 벨의 실험노트 등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벨이 ‘전화기의 아버지’라는 통념에 의문을 던졌다. 슐만이 보기에는 벨의 진영이 그레이의 발명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슐만은 그 근거로 다음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특허심사관이 그레이의 특허권 보호 신청서를 벨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특허심사관은 벨의 변호사인 베일리(Marcellus Bailey)와 남북전쟁을 함께 한 전우로 오랫동안 베일리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를 활용하여 베일리는 특허심사관에게 100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그레이의 발명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고, 특허심사관은 벨에게 그레이의 도안을 보여주면서 그레이의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벨이 그레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화기를 발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슐만의 해석에 따르면, 벨은 처음에 액체 송화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레이의 신청서를 보고 난 후에 연구방향을 전자석 송화기로 바꾸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벨이 1876년 2월 14일에 제출한 설계도에는 없던 사항이 3월 8일에 작성된 실험노트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그림 4> 흰색 박스 안은 1876년 2월 14일에 그레이가 제출한 특허권 보호 신청서 3쪽에 실린 도안이고, 바닥 부분은 벨의 실험노트 중 1876년 3월 9일자 기록이다. 이러한 점은 그레이와 벨이 특허 소송을 전개하면서 제기된 바 있지만, 벨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실상 그레이는 한 동안 전화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전신기술의 전문가로 다중 전신기의 개발에 몰입하고 있었으며 전화를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치부했다. 그레이는 전화의 상업화가 본격화된 1877년 말에 전화에 대한 공식 특허를 신청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레이가 전화의 가능성을 인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화를 완성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초의 발명가를 찾아서 전화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과학자인 무치(Antonio Meucci)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1854년과 1860년 사이에 전기로 작동하는 전화 시스템을 개발한 후 1871년에 임시 특허를 신청했다. 그러나 무치는 정식 특허를 내기 위해 웨스턴 유니언과 협의하는 동안에 전화기 모델과 설계도를 잃어버렸다. 벨이 전화로 특허를 취득한지 3년이 지난 1879년에 무치는 벨을 사기 행위로 고소했다. 지루한 법정 싸움이 이어졌지만, 1889년에 무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재판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그림 5> 잊혀 진 전화 발명가 그레이(왼쪽)와 무치(오른쪽). 2002년에 미국 의회는 무치를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로 인정하면서 “무치에게 10달러의 신청비용만 있었더라면, 벨에게 특허권이 부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몇몇 유럽 사람들은 독일의 과학자인 라이스(Johann Philipp Reis)가 전화를 처음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이스는 1861년에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한 후 이를 ‘텔레폰(das Telephon)’으로 불렀다. 같은 해에 그는 독일 물리학회에서 <직류 전기에 의한 전화>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소리가 공기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기 때문에 공기의 진동을 전류의 강약으로 바꾸면 음성을 전류에 실어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라이스는 전화기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그것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지금도 라이스의 묘소에는 “전화기의 참된 발명자, 필립 라이스”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페이지(Charles Page)가 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는 의견도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내과 의사이던 페이지는 이미 1837년에 전자석으로 흘러들어 가는 전류가 빠른 속도로 방해를 받으면 소리가 방출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효과에 ‘전기 음악(electrical music)’이란 이름을 붙인 후 전류를 방해하는 속도의 변화에 따라 소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식으로 추적을 계속하면, 전화의 발명에 관한 사람들의 명단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사실상 19세기 중엽에는 전화 발명의 시기가 무르익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에 도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이 전화를 발명했다기보다는 복수의 사람들이 전화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논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전화로 세계 최초의 공식 특허를 받고 그것으로 사업을 벌인 업적은 여전히 벨의 차지가 된다. 벨은 전화에 대한 특허 덕분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데, 전화 특허는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단일 특허로는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박람회에서 대륙횡단까지 다시 1876년으로 돌아가자. 그 해는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필라델피아에서 박람회가 개최된 연도이기도 했다. 벨은 박람회 한 부스에서 전화기를 선보였는데, 6월 25일에는 브라질 황제 페드루(Pedro) 2세가 찾아왔다. 벨이 전화기를 통해 햄릿의 유명한 대사 “사느냐 죽느냐”를 말하자 그것을 들은 페드루 2세는 “이 물건이 말을 하네!”라며 크게 놀랐다. 심사위원 가운데 영향력이 컸던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과학자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미국에서 봤던 것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물건”이라 평했다. 그 해 11월에 벨은 100주년 박람회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전화의 상업적 잠재성이 확인되자 1877년 7월 9일에 벨은 허버드, 샌더스, 왓슨 등과 함께 벨 전화회사(Bell Telephone Company)를 설립했고, 이틀 후에는 자신의 제자인 메이블과 결혼식을 올렸다. 1878년에 허버드는 벨 전화회사의 경영자로 베일(Theodore N. Vail)을 영입했다. 베일은 전신기술자로 경력을 쌓은 후 보스턴 우편국 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베일은 우편 행정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전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전화 사업이 서비스와 가격의 양 측면에서 표준화된 체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벨 전화회사는 전화기기를 제작하는 기업들에게 자신의 특허를 대여하는 한편 특허를 침해한 기업을 고소하는 방식으로 전화 산업을 급속히 석권해 갔다. 벨 전화회사는 창립 이후 18년 동안 600건에 달하는 법정 공방을 치러야 했지만, 단 한 건의 소송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벨 전화회사는 1885년에 다른 기업들을 합병하여 미국전신전화회사(American Telephone & Telegraph, AT&T)로 확대․개편되었다. AT&T는 1892년에 뉴욕과 시카고를 전화로 연결했고, 1915년에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대륙횡단 전화통화에 성공했다. <그림 6>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에서 시카고로 통화 중인 벨(1892년) 1893년에 벨의 특허시효가 만료되자 많은 기업들이 전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02년이 되면 벨과 연계되지 않은 독립회사들이 9천 개에 이르렀다. 벨 전신회사나 AT&T가 전화를 사무용으로 간주했던 반면, 새로운 독립회사들은 전화가 사교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에 중산층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친지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화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전화의 다른 용도는 전화 시스템의 변화에도 반영되었다. 처음에는 교환수가 플러그를 써서 전화선을 수동으로 연결시켜 주었지만, 교환수가 전화를 통한 대화를 엿듣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자 자동 다이얼에 의한 전화 시스템이 정착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화가 1882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선진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청나라 텐진의 무기공장에 파견된 상운(尙澐)이 귀국하면서 전화기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실제 통화는 1896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운궁(현재 덕수궁)을 중심으로 중앙부서를 연결하는 전화선과 더불어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화선이 가설되어 공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전화기는 한자의 음을 따서 덕진풍(德津風) 혹은 득진풍(得津風)으로 표기되었고, 음성을 전달하는 기계라는 뜻에서 전어기(傳語機)로도 불렸다. <참고문헌> 토머스 슈트라이스구트(이민아 옮김), 󰡔통신: 더 멀리 더 가까이󰡕 (지호, 2002). 세스 슐만(강성희 옮김),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The Telephone Gambit)󰡕 (살림, 2009). 루스 슈워츠 코완(김명진 옮김), 󰡔미국 기술의 사회사󰡕 (궁리, 2012). 송성수,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 제2판 (부산대학교출판부, 2015). [요약] 벨은 농아에게 발성법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단을 찾던 중에 전화에 관심을 가졌다. 벨은 1876년 2월 14일에 전화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는데, 같은 날에 그레이는 특허권 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19세기 중엽에는 전화 발명의 시기가 무르익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에 도전했다. 하지만 전화로 세계 최초의 공식 특허를 받고 그것으로 사업을 벌인 사람은 벨이었다. 1877년에는 벨 전화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15년에는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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