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아보가드로(49년 만에 인정받은 분자설의 주인공) 송성수  (Homepage) 2021-01-29(금) 16:12:07, 12006

분자설을 제창해 화학의 질서를 잡은 아메데오 아보가드로 역사를 빛낸 과학자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도 제법 있다. 16～17세기의 갈릴레오(Galileo Galilei)와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8～19세기의 볼타(Alessandro Volta)와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20세기의 페르미(Enrico Fermi)와 세그레(Emilio Segrè)가 그들이다. 그중 아보가드로는 1811년에 분자설을 제창해 당시에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여 있던 화학의 질서를 잡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아보가드로의 법칙(Avogadro’s law, 모든 기체는 같은 온도와 같은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같은 수의 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법칙)이나 아보가드로 수(Avogadro’s number, 어떤 물체 1몰이 가진 입자들의 수)를 통해 남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과학자 아보가드로는 과학자 중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정식 이름은 로렌초 로마노 아메데오 아보가드로 디 콰레냐 에 디 체레토(Lorenzo Romano Amedeo Carlo Avogadro di Quaregna e di Cerreto)인데, 보통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로 불린다. 아보가드로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에 대한 사진도 별로 없다. 아보가드로의 초상화를 보면, 체구가 작고 얌전한 성격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아보가드로는 1776년에 프랑스와 인접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법률 분야에 종사해 왔는데, 아버지는 피에몬테 지방에서 법률가와 의회의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보가드로는 철학과 법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1796년에 교회법에 대한 논문으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아보가드로는 법률가로 활동했는데, 이탈리아 법조계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아보가드로는 20대 중반 무렵에 과학자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수학과 물리학에 접하면서 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다. 아보가드로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수학과 물리학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법률가에서 과학자로 변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갈릴레오와 뉴턴의 저작을 즐겨 읽었으며, 볼타의 연구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보가드로가 1803년에 발표한 최초의 과학 논문도 전기에 관한 것이었다. 분자에 대한 가설을 담은 1811년의 논문 아보가드로는 1806년에 토리노 대학의 조교가 되었고, 1809년에는 베르첼리 왕립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당시에 그는 과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수학과 물리학은 물론 화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1811년 6월에 아보가드로는 「물체의 기본입자들의 상대적 질량 및 이들의 결합비를 결정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한 소고(Essai d'une manière de déterminer les masses relatives des molécules élémentaires des corps, et les proportions selon lesquelles elles entrent dans ces combinaisons)」라는 논문을 『물리학, 화학, 자연사 저널(Journal de Physique, de Chimie et d'Histoire naturelle)』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기체 물질의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로 분자를 제안했다. 아보가드로는 돌턴(John Dalton)의 원자설과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 프랑스어 원어로 발음하면 ‘게뤼사크’에 가깝다)의 기체반응의 법칙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기체의 성질을 나타내려면 원자 두 개를 붙여 하나의 구성입자(분자)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보가드로는 ‘기체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기본입자(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같은 온도와 같은 압력에서 같은 부피 속에 존재하는 통합입자(분자)의 수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당시에 아보가드로는 원자(atom)를 기본입자(molécule élémentaire) 혹은 단순입자(molécule simple)라고 불렀고, 분자(molecule)를 통합입자(molécule intégrante) 혹은 구성입자(molécule constituante)라고 불렀다. 아보가드로가 가정한 동일 부피, 동일 입자 수(Equal Volume, Equal Number)는 영문 앞 글자를 따 ‘이븐(EVEN)’으로 약칭되기도 한다.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수증기가 생성되는 반응을 예로 들어 보자. 게이뤼삭이 제창한 기체반응의 법칙에 따르면, 같은 온도와 같은 압력에서 반응하는 수소, 산소, 수증기의 부피 사이에는 2: 1: 2의 정수비가 성립된다. 그런데 여기에 돌턴의 원자설을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해 수증기 2개를 생성시키면, 산소 원자가 쪼개지게 된다. 이것은 기체의 성질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가 원자이고 원자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원자설의 기본 가정에 위배된다. 이와 달리 아보가드로는 기체의 성질을 나타내는 최소의 구성단위를 분자로 보았기 때문에 원자가 쪼개지는 문제점 없이 수증기가 생성되는 반응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림> 돌턴의 원자설(a)과 아보가드로의 분자설(b) 흥미로운 점은 아보가드로의 주장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보가드로의 주장이 수용되는 데에는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과학자인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칸니차로는 1858년에 펴낸 『화학철학 강좌에 대한 스케치(Sunto di un corso di Filosofia chimica)』라는 팸플릿에서 원자와 분자를 확실히 구분한 후 기체의 행동과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원자량과 분자량을 계산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깨끗하게 설명했다. 그 팸플릿은 1860년 독일의 카를스루에에서 개최된 국제화학자회의에서 널리 배포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과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아보가드로의 주장이 인정되는 데에는 49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보가드로의 ‘법칙’ 대신에 아보가드로의 ‘가설’이란 용어가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아보가드로의 주장이 수용된 내막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은 왜 1860년이 되어서야 수용될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보가드로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거론되어 왔다. 아보가드로가 분자설을 발표했을 때 가진 직업은 시골 학교 선생님이었고, 당시 이탈리아는 과학의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아보가드로가 1811년 논문을 프랑스어로 써서 파리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보가드로의 논문을 다른 과학자들이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아보가드로의 주장에 접하고서도 그것을 거부했다고 할 수 있다. 아보가드로의 주장이 곧바로 수용되지 않은 것은 당시로서는 분자가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수소 기체나 산소 기체가 원자 두 개씩 모여진 분자라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원자가 두 개씩 붙어서 기체 분자를 이룬다면, 왜 원자가 세 개, 네 개, 더 나아가서 무한정으로 붙지 않는가에 대한 반론도 가능했다. 당시에 가장 지배적인 입자이론은 전기화학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수소 원자는 양전하를 띠고 산소 원자는 음전하를 띠기 때문에 서로 잡아당겨 물 분자를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두 개의 수소 원자가 옆에 놓이게 되면 서로 전하가 같기 때문에 밀어내지, 절대로 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어떻게 물이 H2O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우리나라 출신의 유명한 과학철학자인 장하석은 2012년에 발간된 『물은 H2O인가?(Is Water H2O?)』에서 유기화학에서 성행했던 분자모델 작업에 주목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수천 가지의 새로운 물질들이 발견되면서 유기화학은 마치 밀림과 같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물질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19세기 중반에는 분자의 구성을 기반으로 유기물을 분류하는 유형 이론(type theory)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물의 유형(water type)에 대한 논의에서는 일단 물을 H2O라 전제한 후 산소 원자가 중간에서 수소 원자 하나씩을 양쪽으로 잡고 있다고 나타냈다. 여기서 수소 원자를 하나씩 빼고 다른 것을 끼워 넣었더니 에틸알코올(C2H6O)이나 에테르(C4H10O)와 같은 다른 분자들을 계속 만들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물의 유형 이외에도 수소 유형, 암모니아 유형, 염산 유형 등도 제안되었다. 이런 식으로 분자모델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유용한 모델들이 물질세계의 참된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점차 우세해졌다. 칸니차로가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을 옹호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수리물리학 교수 다시 아보가드로로 돌아가자. 아보가드로는 1820년에 토리노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당시 토리노 대학은 이탈리아 최초로 수리물리학 강좌를 개설했는데, 아보가드로가 적임자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3년 뒤에는 정치적 이유로 수리물리학 교수직이 철폐되는 바람에 아보가드로는 교수직을 잃고 말았다. 1832년에 정권이 바뀌면서 수리물리학 교수직이 부활되었지만, 그 자리는 코시(Augustin-Louis Cauchy)에게 돌아갔다. 아보가드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코시가 1833년에 프라하로 떠난 덕분에 아보가드로는 교수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림> 아보가드로 사망 100주년을 맞이해 1956년에 이탈리아 정부가 발행한 우표 아보가드로는 토리노 대학에 있는 동안 기상 관측, 도량형 제정, 통계 처리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1848년에는 공교육최고회의의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과학 연구에 대한 여러 업적들은 1837～1841년에 4권으로 발간된 『무게가 있는 물체의 물리학(Fisica dei corpi ponderabili)』으로 정리되었다. 아보가드로는 1850년에 토리노 대학을 은퇴했으며, 1856년에 자신의 분자설이 수용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79세였다. 아보가드로가 제안한 분자의 존재가 규명되고 아보가드로의 수가 공인된 것은 20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1905년에 브라운 운동에 대한 증명을 통해 분자의 존재를 규명했으며, 페랭(Jean Baptiste Perrin)은 1909년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면서 아보가드로의 수를 7.05×으로 계산했다. 이후에 아보가드로의 수는 약 6.023×으로 더욱 정밀해졌고, 분자의 존재는 전자현미경 덕분에 보다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 송성수의 ‘네이버 지식백과’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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