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기술자, 장영실(2) 송성수  (Homepage) 2008-09-27(토) 12:08:38, 3995

이어서 계속됩니다. -------------------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는 적어도 세 가지나 된다. 첫 번째 물시계는 1424년에 제작된 경점지기(更点之器)인데,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간단한 물시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물통에 일정한 속도로 흘러드는 물이 얼마나 수면을 높여주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알 수 있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러한 초보적 형태의 물시계는 원시 시대부터 어느 문명에나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가 8세기에 누각전(漏刻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누적전은 물시계를 담당한 관청에 해당하므로 그것이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물시계가 사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물시계는 1434년에 제작된 자격루(自擊漏)인데, 그것은 이름 그대로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이다. 자격루는 시각에 따라 종, 징, 북이 울리고 인형이 나타나서 몇 시인지를 알려주는 교묘한 장치였다. 기존의 물시계와 달리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흐르는 물의 힘으로 기계장치가 저절로 작동하면서 시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영실은 우리나라 시계의 역사를 기계장치의 시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에는 서양식 기계시계의 도입으로 추시계 혹은 태엽시계가 등장하지만, 원리상으로 기계시계의 시작을 알린 것은 장영실의 자격루였던 것이다. 세 번째 물시계는 1438년에 제작된 옥루(玉漏)로서 그것은 일반적인 시계를 넘어서는  사치스러운 장치에 해당한다. 옥루는 자격루의 교묘함에 놀란 세종이 장영실을 끔찍하게 대해주자 이에 감복하여 장영실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옥루는 자격루처럼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리는 것을 물론 해, 달, 별의 움직임에다 계절의 변화까지 인형을 써서 저절로 나타나게 한 정교한 장치였다. 세종은 1438년에 옥루를 창제한 공로로 장영실에게 종4품직인 대호군을 수여하기도 했다. 장영실은 다양한 기계장치를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금속제련에 관한 업무를 계속해서 담당하였다. <실록>에는 세종 14년(1432년)에 “강경순이란 자가 청옥(靑玉)을 얻어 진상하자, 사직 장영실을 보내어 그것을 채굴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437년에는 장영실로 하여금 중국인 김새(金璽)로부터 금속제련 기술을 전습 받도록 했다고 한다. 장영실은 1438년에 경상도 채방별감이 되어 창원, 울산, 영해 등지에서 나는 동철과 안강현에서 나는 연철 등을 정부에 바쳤다. 채방별감이란 지방의 금속 특산물에 대한 조사와 채굴을 위하여 파견하던 임시직이었다. 이와 같은 금속제련과의 인연은 장영실이 금속활자를 개량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된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였다. 금속활자의 주조 사업은 이천의 주도로 경자년(1420년)에 먼저 시험적으로 시작된 후 다시 갑인년(1434년)에 이르러 보다 완벽한 모습을 드러냈다. 갑인자(甲寅字)는 20여 만 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글자체가 훌륭하고 선명할 뿐만 아니라 하루에 40여 장을 인쇄할 수 있어 그 능률이 경자자(庚子字)의 두 배나 되었다. 이러한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판 틀을 짜고 인쇄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은 금속제련의 전문가로서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측우기는 장영실의 발명품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에 해당한다. <실록>에는 세자인 문종이 비가 올 때마다 땅이 젖은 깊이를 자로 재어보았으나 정확하지 않으므로 구리로 그릇을 만들고 그릇에 고인 비의 양을 자로 재는 실험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에 따르면, 측우기의 창제자는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 된다. 물론 문종이 측우기를 제작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을 비롯한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자격루에 비해 측우기의 가치가 그리 대단하지 않으므로 측우기의 창제자가 문종이라고 해서 기술자로서의 장영실의 위상이 크게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궁정기술자로서 장영실의 활동은 그가 만든 임금의 수레가 고장난 사건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1442년에 신병 치료를 위하여 세종이 경기도 이천으로 온천욕을 하러 가는 도중에 장영실의 감독으로 만들어진 임금의 수레가 부서지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장영실은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았고 4월 27일에 장(杖) 100대의 형벌을 받았다가 세종의 명에 의하여 80대로 감형되었으며 5월 3일에 불경죄로 파면되었다. 장영실이 파면된 이후의 생애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사건이 과학기술자를 천대했던 조선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관료들이 맡은 임무에 대한 문책은 엄격했으며,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그 책임자는 여지없이 처벌을 받았다. 또한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영원히 복직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합당한 처벌을 받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복직되어 더욱 책임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1442년 이후에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세종 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에서 그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한 듯싶다. 장영실의 명성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미 1969년에 과학자 장영실 선생 기념사업회(1985년에 과학 선현 장영실 선생 기념사업회로 변경)가 출범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다. 1999년에는 이 사업회의 주관으로 국내외 최고의 과학기술자에게 수여하는 장영실과학문화상이 제정되었다. 이에 앞서 1991년부터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매일경제신문사가 주관하는 IR 52 장영실상(IR은 Industrial Research의 약어이며, 52는 1년이 52주라는 의미임)이 제정되어 국내 최고의 산업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그야말로 과학기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에게 장영실이란 이름으로 명예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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