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본 것은? 송성수  (Homepage) 2009-02-26(목) 10:40:01, 3601

이번 주 금요일(2월 27일)에 부산일보 과학칼럼에 게재될 글입니다. ----------------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2009년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들여다 본 지 400년, 허블이 우주의 팽창에 관한 법칙을 발표한 지 80년,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디딘 지 40년이 된다. 세계 천문의 해를 맞이하여 세계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지거나 준비되고 있다. 그 중 갈릴레오는 근대적 천문학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다. 천문학의 혁명은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어 17세기에는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태양중심설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을 맡았다. 케플러는 새로운 천문학의 법칙을 정립하였고 갈릴레오는 태양중심설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다. 1609년에 갈릴레오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였다. 그는 달이 울퉁불퉁하다는 점, 태양에 흑점이 있다는 점, 목성에도 네 개의 위성이 있다는 점, 지구에서 보이는 금성의 모양과 크기가 변한다는 점 등을 알아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갈릴레오는 1610년에 <별의 전령>이란 책을 출간하여 태양중심설의 적합성을 선전하였다. 갈릴레오는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목성을 도는 위성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에 투스카니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던 메디치 가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별의 전령>을 투스카니의 대공(大公) 코시모 2세에게 헌정했다. 그 책에서 코시모는 우주(코스모스)에 연결되었고, 코시모 1세는 목성을 뜻하는 주피터에, 코시모 2세의 형제들은 목성의 위성에 비유되었다. 신들의 아버지인 주피터(코시모 1세)의 미덕이 네 개의 위성(코시모 2세와 형제들)을 통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부하는 과학자를 마다할 권력가가 있겠는가? 코시모 2세는 파도바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갈릴레오를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로 임명하였다. 갈릴레오에게는 강의의 임무가 면제되었고 궁정의 고관이나 받을 수 있는 높은 연봉도 보장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갈릴레오의 지위가 “수학” 교수에서 대공의 “철학자”로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교수 사이에도 위계가 존재하여 철학 교수는 수학 교수보다 학문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철학 교수에게는 현상의 본질과 원인을 탐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반면, 수학 교수는 단지 현상을 정확히 서술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수학 교수가 자연현상의 원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학계의 규범을 어기는 일에 해당하였다. 그것은 갈릴레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자연철학자들의 학문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가 새로운 우주론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학문의 위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자원이 필요했다. 갈릴레오는 그것을 메디치 가문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갈릴레오의 모습은 우리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순수한 동기로 연구에 몰두해야 할 과학자가 속세의 비즈니스에 이렇게 밝을 수 있다니? …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갈릴레오의 사례는 과학과 후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사실상 과학은 여러 가지 자원을 동원하여 이루어지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과학이론과 연구인력은 물론 연구실, 실험설비, 경제적 보상, 사회적 분위기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원을 적절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후원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과학자가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정치적이거나 사무적인 업무도 처리해야 한다. 물론 후원이 과학연구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나 왜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과학자는 단순히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자에게는 과학에 대한 후원을 얻어내고 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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