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코펜하겐 협정으로는 안 된다 송성수  (Homepage) 2010-03-10(수) 14:05:02, 3508

녹색연합에서 발간하는 잡지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2010년 3월호 녹색시론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원래 제목은 "추운 겨울, 뜨거운 지구"라고 했는데, 보다 시론의 냄새가 풍기는 제목으로 바뀌었군요. 일독해 보시길 ... ----------------------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필자가 사는 부산에는 겨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가 되는 경우도 많지 않았는데, 이번 겨울에는 최고 기온도 영하가 되는 날이 제법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왜 이번 겨울은 추웠을까?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심층 순환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심층 순환은 저위도 지방이 지나치게 더워지거나 고위도 지방이 지나치게 추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심층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여름은 더워지고 겨울은 추워진다. 그것은 온돌 밑에 깔린 파이프가 막혀 아랫목만 따뜻하고 윗목에는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이제 지구는 고장 난 보일러가 된 것일까?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가 다루고 있는 것도 이러한 주제이다. <투모로우>는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갑자기 남극의 빙하가 녹는 것에서 시작한다. 바닷물에 녹아든 빙하는 해수의 온도를 낮추게 되고 그 결과 해류가 급변하게 된다. 해류의 변화로 미국은 허리케인의 급습을 받으면서 차디찬 빙하기를 맞게 된다. 기상학자인 주인공은 미국 지도 한 가운데에 가로로 긴 줄 하나를 그으면서 이 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내일이나 모레가 바로 오늘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의 주된 이유는 인간이 내놓은 온실가스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온실가스 대신에 태양의 활동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태양의 활동이 표면의 폭발이나 흑점의 변화로 활발해지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의 활동보다 온실가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점은 1988년에 설립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이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IPCC의 1990년 보고서는 “온실가스의 증가가 만들어낸 효과를 정확히 탐지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1995년 보고서는 “인간이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친 증거가 있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더 나아가 2000년 보고서는 “인간의 활동이 과거 50년 동안의 기온 상승을 유발했다는 새롭고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하였고, 2007년의 보고서는 “사실상 확실하다”는 식으로 강한 결론을 내렸다. 인류 사회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여 왔다. 교토의정서가 1997년 12월에 채택된 후 2005년 2월부터 발효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인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채택된 코펜하겐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업화 이전보다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한다는 전 지구 공유비전을 세웠다. 둘째, 선진국은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에 대한 추가적인 감축목표를, 개도국은 정량적인 감축목표 없이 감축계획을 2010년 1월 31일까지 제출키로 하였다. 셋째, 기후변화 취약국에 대하여 향후 3년간 300억 달러를 긴급지원하고 2020년까지는 1,00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폐회식에서 “드디어 우리는 합의를 이뤄냈다. 코펜하겐 협정이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첫걸음, 본질적인 첫걸음이다”고 하면서 합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수많은 환경단체들은 무능력한 기후변화회의를 질타하는 시위를 벌였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자국의 이해타산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코펜하겐 협정이 2012년에 만료될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공통의 강제 조처를 도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코펜하겐 협정은 기후변화협약의 공식적인 결정사항이지만, 협정 내용을 그대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협정에 “유의”(takes note)할 것을 결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1월 31일이 기한이었던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한 국가는 80개국 정도에 불과했다. 기후변화 취약국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도 선진국들은 아무런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단계로 들어섰다는 징후는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고 이로 인한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인류 사회가 조속히 높은 수준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코펜하겐 협정을 보완해 법적 구속력을 갖추고, 구체적인 실행 목표와 시기를 정하는 책임은 올해 말 멕시코시티에서 열릴 제16차 총회가 떠안게 되었다. 올해 안에 논의를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양보가 절실하다. 멕시코 회의가 또 다시 어리석은 회의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깨어 있으라, 그 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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