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최영도  (Homepage) 2006-11-20(월) 10:05:53, 5183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 오전,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약간은 귀찮다는 감정을 넣어 전화기를 들었는데 상대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재촉한다. 최영도선생님 댁이죠? 예, 그렇습니다. 저는 선생님 반의 ○○ 형님인데 지금 좀 뵐 수 없을까요? 그냥 전화로 말씀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전화로는 얘기할 수 없는 일이라서ㆍㆍㆍㆍㆍ 알았습니다. 우리 집이 문현동인데 서면 쯤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죄송합니다만 선생님께서 이곳까지 꼭 좀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금 계신 곳이 어딥니까? 연산동에 있는 부산의료원 아십니까? 압니다. 그런데 동생이 지금 그곳에 있습니까? 아뇨, 아버지가ㆍㆍㆍㆍㆍ 예, 알았습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형님 같다는 느낌에 눈길을 주자 인사를 건네고 아버지께로 안내했다. 아버님은 어디 계십니까?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아버님이 지금 위독하십니까? 아뇨, 의료파업 중이라 입원실이 없다고 그곳에 계십니다. 동생은 아버님 곁에 있습니까? 아뇨, 아버지가 얘기하실 겁니다. 형과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저 안쪽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분이 계셨다. 핏기없는 하얀 얼굴에 선한 눈빛, 꼭 ○○를 대하는 것 같았다. 침상 곁으로 다가서며 그냥 누워 계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기어코 일어나 앉는구나 싶더니만 꿇어 앉는 것이다. 아버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편히 누우셔서 얘기하시죠.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선생님! 선생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저 때문에 우리 ○○가 지금ㆍㆍㆍㆍㆍ ○○는 지금 어디있습니까?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하십시요. 저 때문에 우리 애가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예? ○○가 지금 유치장에 있다고요? ○○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실은 제가 몇 년 전부터 실직을 하고 애 엄마가 새벽부터 식당에 나가 근근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뭘 좀 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되는 일도 없고하여 평소 술을 자주 마십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주벽이 심해 밤새 가족들을 괴롭히곤 한답니다. 그런데 지난 며칠 동안은 계속 술만 마시면서 애를 괴롭혔답니다. 오늘이 애 자격증 시험일이라 며칠 째 잠도 자지않고 공부하고 있던 애를 내가 계속 불러다가 꿇어 앉혀놓고 온갖 욕설과 저주로 애를 괴롭혔다더군요. 그 바람에 내성적이던그 놈이 욱하는 심정으로 제게 상처를 입혀 저는 119에 실려오게 되었고, 애는 지금 유치장에 가 있답니다. 선생님! 제가 가야할 곳에 우리 애가 가 있습니다. 우리 애의 장래를 다 망쳐 놓은 놈입니다. 선생님 무슨 길이 없겠습니까? 아버님 죄송합니다. ○○가 워낙 말이 없는 친구라서 평소 그런 아픔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일이라도 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일단 내일 ○○부터 만나보고 담당 형사님도 만나 보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건강부터 회복하십시요. 우리 반 ○○학생은 1학년 때부터 2학년인 지금까지 지각, 결석, 조퇴가 한번도 없는 모범 학생이다. 또한 3월 초 첫 상담 때 진학을 희망했다가 취업해 있던 형이 재수를 하게되자 자기보다는 형이 공부를 더 잘 한다면서 자기가 취업해서 형을 돕다가 군 제대 후 대학진학을 하겠다던 너무나도 착한 학생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런 짓을! 아무리 상상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만 들어왔던 패륜아들에 관한 기사가 스쳐지나가며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ㆍㆍㆍㆍㆍㆍ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은 유대의 법률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법률이 매우 잔인한 법률 같지만 사실은 매우 인간적이며 이성적인 법률인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생활하면서 간혹 내 자신을 무시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때가 많다. 그런데 하물며 별 이유도 없이 누가 내 눈을 뽑았다고 상상해봐라, 그리고 네가 내 눈을 뽑았으니 나도 네 눈만 뽑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를 준 것보다 더 큰 폭으로 보복을 당하게 되면 그는 더 큰 가해를 행하려 하지 않겠는가? 유대의 랍비들은 이런 인간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관용치와 가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치를 균등하게 하도록 법으로 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갚음에서는 이성적인 공정함을 느끼게될 지는 몰라도 계산없는 사랑과 감동의 눈물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폭언을 아들은 폭력으로 갚았다. 아들의 폭력에 아버지는 왼 뺨을 돌려대는 마음으로 뉘우치고 계신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눈물맺힌 얼굴을 대하며 평소 아픔을 같이 나누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 달라고 얘기했다.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란다. 띄엄띄엄 어렵게 이어가며 내뱉는 말보다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다가온다. ○○아, 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너를 용서했단다. 그리고 아버님은 당신의 잘못이라며 괴로워하고 계신단다. 아무리 법이 냉정하다 할지라도 그 법도 인간이 만든 법이며, 인간이 운용하는 법이므로 정상이 많이 참작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용서한다 하더라도 너 자신만은 너의 그런 행동을 쉽게 용서하지 말아다오. 흐르고 또 흐르는 눈물로써 가족사랑의 소중함을 깊이 간직하려무나! 200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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