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용서해준다면 조홍제  (Homepage) 2007-01-21(일) 09:46:03, 89530

20년 전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몇 년을 실직 상태로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친척 누나에게 돈을 빌려 세탁소를 시작했다. 차차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 조금씩 마시던 술이 늘어갔다. 4년 뒤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하지만 같은 상가에 다른 세탁소가 생겨 경쟁이 붙었다. 양복 한 벌 세탁 값이 6천 원에서 2천 원까지 곤두박질쳤다. 가진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빠져나갔다. 그 괴로움을 술로 풀면서 내 게으름도 계속됐고, 결국 경쟁자에게 가게를 넘기고 말았다. 날마다 술만 마시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때 둘째 딸이 조산아로 8개월 20일 만에 태어났다. 왜 조심하지 않고 애를 일찍 낳았냐고 아내에게 큰소리만 쳤다. 그게 아내 탓이 아니란 것을 내가 더 잘 알면서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사를 가서 세탁소를 열었다. 이를 악물고 노력하길 5년 ,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고 오직 일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우연히 모임에서 누가 술을 섞어놓은 음료수를 마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버린 나는 마침내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절망과 후회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내가 면회를 왔다. 아내는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 생활이 어렵다며 애들과 살아야겠으니 가짜 이혼을 하자고 했다. 그러면 내가 기초생활자가 되어 병원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2005년 2월 5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혼을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3개월간 치료를 받고 퇴원해 집에 갔다. 텅 빈 방안의 먼지만이 나를 반겼다. 아내가 날 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오직 아내를 원망하며 다시 술병을 부여잡고 다니다 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체념에 빠지면서 너 없으면 못 살까 하는 오기가 생겼다. 퇴원해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세탁소에 기사로 취직했다. 한 달 수입이 40만 원 정도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한 아내를 이제 놓아주자. 아이들에게 그 옛날의 못난 아빠의 모습을 다시는 보여주지 말자.` 다짐에 다짐을 하며 지금까지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아내는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가끔 연락도 하고 주말이면 아이들을 내게 보내준다. 고마울 뿐이다. 때늦은 후회를 한들 소용없겠지만 혹시 아내가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준다면 옛날의 그 잘못을 이제부터 갚아나가며 정말 떳떳한 아빠,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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