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치는 나랏말 교육 김정식  (Homepage) 2009-10-21(수) 09:00:29, 3198

<초추(初秋)란 말은 아름답다. 초가을 해도 될 것을, 초추(初秋)라고 이름 부르니 괜한 낭만이 생긴다.>   어느 수필의 머리 부분이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이 글쓴이는 ‘새봄이 왔다.’보다 ‘신춘이 도래했다.’라고 해야 아름다운 느낌이 나고 낭만이 생길 사람이다. ‘어머니’보다 ‘모친’이라야 정겨움을 느낄 사람이다. 어찌 이 사람뿐이겠는가? 글을 쓴다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문학을 키운 白樺나무, 러시아 문학의 樹液은 백화나무에서 나온 것이다. 소련 땅을 여행해 보면, 소련의 國木인 백화나무가 도처에 백성들의 素心처럼 하얗게 깔려 있다.>   이 글은 소련과 국교를 틀 무렵, 어느 신문의 문화면에 실린 사진 해설이다. 거슬리는 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아니고 어째서 ‘백성들의 素心’인가? ‘樹液, 國木, 도처’ 같은 말도 좋은 우리말이 있을 텐데. 그러나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白樺나무’다. 일본 사람들이 러시아 문학 작품에 나오는 ‘자작나무’를 ‘白樺(시라카바)’라고 번역한 것을 우리가 모르고 따라 쓴 말이다. 정비석의 기행문『산정무한』에도 이 ‘백화’가 나온다.      이 땅에 자라는 나무 이름, 풀 이름조차 제대로 모른다면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우리말 ‘땅, 풀밭, 들판, 웃음’을 두고 ‘대지, 초원, 평원, 미소’라고 써야 문학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우리 겨레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해, 달빛, 큰바다, 메숲’이면 그만인데, ‘태양, 월광, 대해, 산림’이라 하고, ‘사람, 사랑, 미움, 시샘’이면 될 것을 굳이 ‘인간, 애정, 증오, 질투’라 하니 모를 일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원고지 20매(스무 장), 춘계(봄) 소풍, 시건(잠금) 장치, 수납창구(돈 내는 곳) 따위의 한자말이 일상화되어 있어 우리 말살이를 어렵게 하고 있고, ‘새로 신설한 학교’,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등의 겹친 말도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학교 교육이 우리를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공부할 것을 지시하는 말에 <위의 낱말을 정확하게 읽어 보자.>, <두 말을 비교해 보자.>,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다음 낱말을 사용하여…….> 따위가 나온다. 이 말들은 ‘올바르게’, ‘견주어’, ‘떠올려’, ‘낱말을 가지고, 낱말로, 낱말을 써서’란 쉬운 순우리말을 쓰면 된다.      갓 입학한 어린이들에게 순우리말을 버리고 한자말부터 가르치니, 집에서 부모한테 배운 우리말은 배움이 없는 사람이나 쓰는 부끄러운 말이고, 이제부터는 어렵고 유식한 말, 책에 나온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고 있으니 남의 말, 남의 말투를 부끄럼없이 쓰고 있다. 곱고 쉬운 우리말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외래 문화에 휩쓸리고 외제 물품을 좋아하며 제 뿌리를 잃어가는 것이 모두 교육의 잘못이다.      언어 교육은 교육의 핵심이다. 언어를 올바르게 배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세계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우리 얼을 지닌 건강한 한국인을 기르는 것이라면, 우리의 얼이 담긴 나랏말 교육이 바로 되어야 할 것이다.

최영도		교장 선생님, 오늘 이 글을 읽고 보니 저도 겁이 덜컹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이런 종류의 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표현을 더 많이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 이 덧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이런 조심들이 조금씩 바른 우리 글 회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10-21 10:31:22
김정식		관심을 가져 주어서 고맙습니다. 우리 몇 사람의 관심이 바탕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면, 그게 곧 겨레말과 얼을 지키는 일입니다. 방송과 신문에서 바르게 써 준다면 훨씬 효과가 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이런 글을 올릴 기회를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2009-10-21 21:12:44
최정임		선생님. 감사합니다.자주 깨우쳐 주십시오	2009-10-22 12: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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