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말 유감 김정식  (Homepage) 2009-04-28(화) 06:43:40, 2939

<보사위 國監 부실 답변>, <드러난 韓-中, 北-日 수교>, <選對委 구성> 등은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 뜻만 잘 전해진다면 편리한 말법이다. 이처럼 둘 이상의 낱말이 모인 긴 말을 줄여 말할 때, 머리 글자를 모아쓰는 것을 아크로님(acronym : 頭文字語)이라 하여 언어 경제의 한 방법으로 쓰고 있다.      오래 전 어느 신문에 <아- 대통령 訪歐>란 제목이 있었다. 한자로 써서 뜻은 통했지만 그 발음으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유럽에>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쉽고 좋은 말이 되겠는가?  단체 이름인 사정추(사립 학교 정상화 추진 위원회), 서울 천사협(서울 지역 천주교 사회 운동 협의회), 전대기련(전국 대학 신문 기자 연합회) 따위도 직접 관여하는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아크로님 방법이 대학생 사회에 이용(?)되어, 정상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은어를 만들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청초하다(청승맞고 초라하다), 제자(제멋대로 자란 놈), 요지(요즈음 보기 드문 지성인), 수재(수백 번 보아도 재수 없는 놈) 들을 비롯해 A학점(어브노멀 : 비정상), F학점(파이니스트 : 가장 좋은)처럼 영어를 이용한 것도 많다.      게다가 중고생들도 이를 흉내내어 엉뚱한 애(엉덩이가 뚱뚱한 애), 특공대(특별히 공부도 못 하면서 대가리만 큰 애), 머비(머리가 빈 사람), 공순이(공부하는 순진한 여학생) 따위의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이러한 은어는 경우에 따라 재치와 웃음을 주어 분위기를 명랑하게 할 수도 있지만, 언어의 순수성을 흐리게 하며 건전한 기품을 잃게 한다. 이런 저속한 말들은 마땅히 정화해야 함이 우리 말글에 대한 자세이다.    지나간 시대의 지도자들을 일컬을 때, 우리는 그들의 호(號)인 백범(김구) 인촌(김성수), 설산(장덕수), 유석(조병옥), 해공(신익희) 등을 이용했다. 비록 한자말일망정 존경스런 지도자인 양 느껴졌다.        그런데 외국 출신도 아닌, 이 나라의 내로라 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에 ‘MB, YS, DJ, JP’라는 서양 문자를 쓰고 있어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오늘의 정치가들은 옛날 지도자들만큼 인품이 모자라고 존경스럽지 못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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