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영화처럼 - 김경욱의 초기작들 김민서  (Homepage) 2010-03-04(목) 23:31:26, 8133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작가들 작품을 읽다보면 동질의 경험과 비슷한 취향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땐 작품 자체보다는 '맞다맞어, 그땐 그랬지.'  '그래그래, 나도 저런 걸 좋아했었어.'라는 식의 반가움이 왈칵 솟아나곤 해서 글 속에 더 쉽게 동화되고 감정이입도 잘 되는 것 같다. 김경욱의 초기작들인 '모리슨호텔'과 '장국영이 죽었다고?'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을까' 등을 읽으면서 90년대 초중반에 20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열광하고 탐닉했을 많은 문화적 코드들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90년대 초반은 바야흐로 비쥬얼의 문화가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시대이고 이러한 경향은 더욱 세련되고 풍부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누벨바그나 누벨이마쥬 등으로 불리던 새로운 사조의 유럽영화를 보지 않으면 지식인이라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시대가 바로 그 때였던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탄탄한 내러티브를 가진 볼거리 많은 요즘의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가주의의 이미지 영화들을 그 땐 왜 그렇게 열광하면서 보곤 했을까. 지금은 그 이름도 가물가물한, 에이젠슈타인, 타르코프스키, 폴란스키, 고다르, 오손웰스, 비토리오데시카 등의 고전에서부터 뤽베송, 레오까락스, 쟝쟈끄베네, 쟝삐에르쥬네, 쟝쟈끄아노, 라스폰트리예에 이르는 유럽영화의 신예들과 구로자와 아끼라, 첸 카이게, 후 샤오지엔, 이안, 왕가위, 트란 안홍,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 동양의 작가들 영화들까지 입덧하는 임산부가 먹을 것 찾아다니듯이 시네마떼끄를 찾아다니며 보았고 친구들을 만나면 대부분의 화제거리도 그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같은 단과대 학생들에게 개방되었던 영화학과 전공과목인 영화사와 영화미론 등의 과목을 수강하기도 했다. 휴학을 하고 울산에 내려와 있을 땐, 한 영화동아리에 참여해서 영화를 제작해 보기도 했다. 이 작업은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미완으로 끝나긴 했지만...... 비단 영화 뿐만 아니다.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라면 음악을 듣는 입맛마저 비슷해서 그들은 반드시 도어즈와 너바나를 좋아했다. 짐모리슨과 커트코베인 같은 아웃사이더들의 주체할 수 없는 광기와 열정어린 삶과 죽음을 동경하며 안주거리 삼았다. 장편 '모리슨호텔'은 도어즈의 앨범 제목이다. 김경욱의 소설에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청춘이란 언제나 그렇게 고독하고 방황하며 적의로 가득한 눈빛을 세상으로 보내는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청춘은 어떠했는가.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나는 늘 주변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신념과 믿음은 관념적이었을 뿐 몸을 내던지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경욱 소설 속 인물들처럼 차라리 바닥까지 방황하고 추락해 버릴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 때는 그것이 인생의 단추를 잘못 끼우는 일처럼 여겨졌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방황은 젊음의 특권인 듯도 싶고 남은 인생을 기름지게 할 거름이 되는 일처럼도 여겨진다. 젊은이들이여, 맘껏 방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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