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과 바다 김민서  (Homepage) 2010-08-03(화) 13:21:59, 124880

바야흐로 바다의 계절이다. 하지만 흥청댈 뿐, 정취가 없는 여름바다를 떠올리면 그 곳이 그리 간절하지는 않다. 대신 시원한 떼 배깔고 누워 한창훈의 소설 속 바다를 읽는다면 훌륭한 피서가 될 듯 싶다. 한창훈은 지방지의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는데 '닻'이라는 등단 작품부터 시작해서 모든 작품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니, 적어도 내가 읽은 한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소설은 없었다. 실제로 그는 남도지방에서 살고 있는데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라는 작품은 세상 곳곳을 전전하며 갖가지 체험을 한뒤 고향인 남도의 작은 섬에 흘러들어간 작중화자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데 아마도 작가의 직접체험담이 그대로 녹아있는 글인 듯 싶다. 또 한편의 장편소설 '홍합'은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인데 역시 홍합을 가공하여 수출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과 각양각색의 삶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쓴 소설이다. 그리고 문예지나 소설선집에 실려있는 그의 단편들도 모두 바닷가에서 살고 죽는, 갯가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그래서 늘 그의 소설에는 질펀한 남도 사투리와 해학과 때로는 짙은 페이소스와 애잔한 서정이 농도짙게 배어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웃음과 가슴 먹먹함과 슬픔과 비루한 그들 삶에 대한 애정이 절로 솟아나는 까닭일것이다. 바다라는 드넓고도 무한한 두려움의 공간인 그 곳이 가지는 상징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바다와도 치환될 수 있는 말이리라. 그의 바다는 잔잔하다가 휘몰아치기도 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우며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친근하나 또 누구에겐가는 더없이 두려운 그런 공간이다. 얼마전 이정록의 시집을 읽다가 '한창훈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시가 있어서 같이 소개해 본다. ********************     숲   ~한창훈에게   홀로 숲이 되는 사람이 있다   홀로 열두 마리 짐승이 되어   파도 저 아래처럼 겨울잠도 자고   봄 칡도 파헤치는 거시기가 있다   바다에 가면 파도의 숲   사막에 가면 모래의 숲이 되는,   홀로 일백이십 마리의 짐승을   열매 맺는, 인화성 나이테가 있다   망우리에 가면 망우리의 모든 봉우리를   망월동에 가면 망월동의 모든 봉우리를   모닥불로 바꾸는 매운 눈물의 숲이 있다   무덤에 들면 무덤을 덮어버리고   비석이며 비목에 이파리를 내다 거는   깊고 푸른 그늘이 있다   그의 응달쪽 자갈길을   툭 건드려보아라 그의 산등성이가   일천이백 마리의 숲을 데리고 나와   검문도 앞바다의 소금 산맥을 보여 주리니   홀로 일만이천 겹의 풍랑을 잠재우고   동백나무 숲으로 세상을 돌려놓는   숭악한 짐승이 있다, 홀로   바다가 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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