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는 행복할까 김영국  (Homepage) 2020-11-20(금) 08:21:42, 17073

산책로의 벚나무가 나목이 되어가고 있다. 남아있는 잎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마저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결국 한 잎사귀가 간발의 차로 ‘마지막 잎새’가 될 것이다. 그 잎은 어떤 심정일까. 끝까지 남은 마지막 잎사귀는 치열한 서바이벌게임의 최종 승자다. 떨어져 누운 낙엽들은 그의 패배자들이다. 그들을 내려다보노라면 저절로 회심의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금메달 박스에 올라,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금메달리스트의 심정일 것이다. 혼자 남아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은 국기를 흔들며 트랙을 돌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무에 남아있는 저 잎들은 준결승쯤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 체력장의 오래 매달리기 하는 수험생을 보는 듯하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힐끗힐끗 경쟁자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는 것 같아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월명사의 <제망매가 祭亡妹歌>는 먼저 간 누이를 애도하는 신라시대 향가다. 그 작품에서 누이는 한 가지에 나서 함께 자라다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떨어져버린 잎에 비유되어있다. 한 가지에 난 잎이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동기라면 한 나무에 달린 잎은 모두가 일가친척이다. 그렇게 본다면 ‘마지막 잎새’의 심정은 딴판일 것 같다. 일가친척 형제자매 다 먼저 보내고 가지 끝에 홀로 남아 늦가을의 찬바람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부비며 체온을 나눌 형제자매도 없고, 바람을 막아줄 이웃도 없고, 도란도란 얘기 나눌 친구도 없다. 밤이 무섭기도 할 것이고 바람이 더 시리기도 할 것이다. 눈 아래 깔려있는 낙엽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의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결혼을 하고 제우스에게 찾아가 티토노스가 영원히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늙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깜빡했다. 티토노스는 여느 인간처럼 늙어갔다. 에오스는 그대로 젊고 예쁜데 티토노스는 체력도 외모도 목소리도 형편없이  쇠잔해갔다. 형제도 친구도 다 가고 주위에 얘기 나눌 지인 하나도 없었다. 티토노스의 유일한 희망은 죽음이었다. 부러운 오직 하나는 무덤 속에 묻혀있는 먼저 간 사람들이었다. 보다 못한 제우스가 그를 매미로 변신시켜주었다. 혼자 남은 잎사귀는 행복할까. 남들보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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