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인간 김영국  (Homepage) 2020-11-10(화) 19:43:42, 17048

‘사람’과 ‘인간’은 동의어다. 지시대상이 같은 고유어와 한자어다. 우리말에는 이런 예가 많다. 그런데 지시대상은 일치하지만 그 느낌이나 쓰임이 달라, 엄밀한 의미에서 동의어가 아니라 유의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름-성함,머리-두상, 술-약주, 이-치아, 나이-연세 등은 그 쓰이는 자리가 다르다. 대체로 한자어에는 존중의 뜻이 가미되어있어 윗사람에게 사용한다. 고유어보다는 한자말이 더 고상하다는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그런데 ‘사람-인간’의 경우는 그 틀에서 벗어나있어 흥미롭다. “너 그 사람 알지, 그 사람 어때?‘ “아 그 인간......” 대답이 이렇게 시작되면 뒷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아 그 사람......”과 비교해보면 두 단어의 위상이 짐작될 것이다.‘인간 말종’이라는 말은 있어도 ‘사람 말종’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연예인들의 토크쇼는 대개 가족 험담하는 것으로 시청률을 올린다. 이른바 ‘셀프 디스’를 아슬아슬 선을 넘나들며 잘하는 연예인들의 인기가 높다. 한번은 눈치 없는 비연예인 출연자가 나와, 내내 시댁 식구 특히 시어머니에 대한 자랑과 고마움으로 일관했다. 분위기가 싸하게 식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회에서 천연기념물 같던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여자 시청자들로부터 ‘재수 없는 X’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가족 가운데 일등 메뉴는 단연 남편이다. 한 개그우먼은 특유의 입담으로 남편을 재치 있게 헐뜯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사회자가 그녀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 인간은 내 인생의 로또야.” 의외의 대답에 다들 의아해했다. 지금까지의 얘기하고도 딴판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인간’과 ‘로또’의 조합이었다. 사회자가 그 뜻을 물었다. 그녀는 역시 언어 희롱의 달인이었다. “그 인간은 나하고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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