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멍들어가는 국어 김영국  (Homepage) 2020-10-30(금) 19:44:45, 17078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침대는 장식용이 아니라는 말을 잘 드러낸 명 카피였다. 그러나 말을 배우는 아이들의 언어체계를 혼란시킨다는 이유로 이 카피는 사라졌다. 정치는 이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더 심각하게 우리말을 훼손하고 있다. 저 높은 곳의 쎈 분들이 하는 짓이라 누가 어떻게 제재할 수도 없다. 무력하게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부문이 정당 이름이다. 전두환이 창당한 정당이 민주정의당이었다. 민주라는 말도 정의라는 말도 시궁창에 빠져버렸다. 얼마 전 심상정이 누더기 선거법 하나 얻으려고 공수처법 통과시켜주고 조국을 두둔하며 여당의 들러리를 선 바 있다. 그때 나온 말이 ‘정의당에 정의가 없다.’는 말이었다. 정의가 또 한 번 수난을 당한 것이다. 국민이라는 말도 그들은 그냥 두지 않았다. 국민 가수, 국민 MC, 국민 배우 등에서 보듯 ‘국민’은 최고의 위상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을 깜냥도 안 되는 정당의 이름에 끌어들여 이 어휘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 국민의 당, 국민의 힘 이런 정당이 국민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압권은 더불어 민주당이다. ‘더불어’가 아니라 오히려 편을 갈라 서로 싸우게 하고, 자기 진영만 똘똘 뭉쳐 반대 진영을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 민주도 그렇다.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대통령 일인만이 주인이다. 청와대 참모, 국무위원, 심지어 170여 명의 국회의원까지 일사불란하게 문재인의 뜻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민주가 아니라 ‘문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이 국어를 오염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청년의 날에 행한 대통령의 연설이다. 미국에서 순위경쟁에 여념이 없는 BTS를 불러 앉혀놓고 공정이라는 말을 무려 서른일곱 번이나 언급했다. 조국의 아들딸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었고, 공교롭게도 추미애 아들의 엄마 찬스로 청년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 연설을 듣는 국민들은 공정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 보낸 친서에서 ‘위원장님의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고모부, 이복형을 비롯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처형한 행적을 다들 잘 알고 있는 터다. 게다가 이 친서는 조난당한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시신마저 훼손된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때에 공개되었다. 생명존중이라는 고귀한 말이 망가지고 말았다. 대통령의 말을 두고 유체이탈화법이라 이르는 것을 언어 쪽에서 보면, 음성과 실체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국어 교란의 다른 이름이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의 국어 희롱이 도를 넘는다. 지금의 화두는 검찰개혁이다. 정부 여당은 언필칭 검찰개혁의 완성을 부르짖는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다. 권력의 주구가 되어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는 덮어버리고 반대 진영 특히 대통령에게 찍힌 인사의 뒤를 캐서 죄를 뒤집어씌워왔다. 마침 지금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사람이다. 그리고 임명장 수여식에서 대통령의 지시대로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했다. 그런데 원칙대로 수사하는 총장을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권력의 애완견들을 검찰의 핵심자리에 이미 앉혀놓았고, 이제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대통령의 아바타들이 운영하는 공수처를 만드는 것을 그들은 검찰개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언론개혁도 마찬가지다. 자기 수중에 넣지 못한 두세 개의 신문과 종편마저 자기 입맛대로 길을 들이거나 폐지해버리는 것을 그들은 언론개혁이라 여기고 있다. 개혁과 개악을 등가의 말로 둔갑시켜버렸다. 국어를 멍들인 일인자는 단연 조로남불의 대가 조국이다. 그리고 그의 진영이다. 특히 가슴 아픈 일은 국어 사랑의 첨병이자 최후의 보루여야 할, 시인 안 모, 장 모를 위시한 문인들이 그의 호위무사로 나선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위선자를 옹호하기 위해 그들은 서슴지 않고 국어를 비틀고 뒤집고 구겨버렸다. 박원순 사건 때 일이다. 피해자가 갑자기 ‘피해호소인’이 돼버렸다. 어느 현직 여검사는 박원순과 팔짱낀 사진을 공개하며 자기도 권력형성범죄자라며 ‘피해호소인’을 조롱했다. 관노와 잠자리를 한 이순신도 성범죄냐며 이순신과 함께 피해자를 욕보이기도 했다. 추미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국어를 유린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당 대변인은 그 아들을 두고 안중근 의사가 말한 ‘위국헌신’의 본보기라 칭찬했다. 추미애는 아들의 휴가를 위해 보좌관에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스물일곱 번이나 부정했다. 그런데 담당장교의 전화번호를 보좌관에게 보낸 카톡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시라고 볼 근거가 없다고 우겼다. 거짓말을 추궁하자 기억이 안 났을 뿐이지 거짓말은 안 했다고 정색했다. 조난 공무원 살해 사건을 두고는 북한을 비호하느라 애먼 국어를 짓밟았다. 류시민은 사과한 김정은을 두고 계몽군주로 추켜세웠다. 말썽이 일자 비유가 너무 고급졌다고 장난을 쳤다. 백미는 김어준이다. 해상에서 사살한 것은 그쪽의 방역 방식이고, 그 자리에서 시신을 태워버린 것은 ‘화장’이라고 볼 수 있단다. 일반인도 국어를 오용할 수 있고, 자기변명을 위해 일부러 국어를 비트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교묘하게 꼬아버린 국어는 매스컴에 반복 노출되기 마련이고 진영의 무리들은 이에 환호하며 확대재생산한다. 자연히 국민들에게 각인되면서 국어는 망가지게 된다. 정치색이 없는 단체가 있어, 국어를 훼손하는 정치인을 감시하고 지적하여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면 좋겠다. 국어도 지키고 정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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