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김영국  (Homepage) 2022-02-08(화) 17:06:17, 21949

몰랐던 단어 하나를 안다는 것이 단순히 어휘력을 증대시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불평등’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부조리한 사회의 한 단면에 눈뜨게 되고,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만남으로써 내가 겪고 있는 불편한 마음의 상태가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을 깨닫게 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문맥으로 보아 뭔가 음흉하고 교활한 녀석인 것 같다. 생판 모르는 것보다 개념을 알아두면 이 녀석의 덫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용어는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이 제작한 연극 <가스등 Gas Light>(1938)에서 유래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조지 쿠커가 감독하고 잉그리드 버그먼과 샤를 부아에가 주연한 영화 <가스등 Gaslight>(1944)을 통해서였다.(김광균의 시 <와사등>의 ‘와사’는 ‘가스’의   음역이다.) 영화에서 남편 그레고리는 아내 폴라로 하여금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 수단 중 하나가 가스등이었다. 가스를 이웃과 나누어 쓰던 시대라 이웃집에서 가스등을 켜면 그 이웃집의 가스등이 어두워지게 돼 있었다. 폴라가 어두워졌다고 불평하면 그레고리는 폴라의 시력에 문제가 있다고 뒤집어씌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폴라는 자신의 감각과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자책하며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남편의 지시에 맹종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행위를 가스라이팅, 가해자를 가스라이터라 이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은 부모 자식 사이, 부부, 형제자매, 연인, 친구 등 주로 친밀한 관계 그리고 학교나 직장, 사이비종교나 정치 등 일반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가스라이터는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자존감과 주체적 사고력을 잃게 만들어, 피해자를 편안하게 조종하고 통제하고 억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신력이 약해져서 자연스럽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문제는 가스라이터가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가스라이팅을 진행하기 때문에,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스라이터의 행위는 교묘하고 집요하다. 피해자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반박’하거나, 문제를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워 스스로를 의심(전환)하게 만든다.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유난하다든지 예민하다는 말로 하찮게 여기기(경시)도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잊은 척하거나 부인하는(망각) 행위를 반복하여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기다 피해자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피해자의 의견을 ‘무시’한다. 이러한 행위가 점진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지면서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존감은 낮아진다. 특히 가스라이터는 피해자를 마음 놓고 조종하기 위해 친구 가족 등으로부터 고립시킨다. 결국 피해자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겪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의 피해를 막는 방법은 가스라이터와 멀어지는 것이다. 가스라이터를 판별하기도 어렵거니와 가스라이팅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는 혼자 힘으로는 매우 어렵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라도 대단한 용기와 노력이 요구되는데, 가스라이터가 부모, 배우자, 직장 동료나 상사, 교사, 사이비 종교일 경우는 난감하다. 전문가(상담사,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스라이터를 미리 알아보고 아예 엮이지 않거나 가스라이팅의 초기 단계에 눈치를 채고 과감하게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의 저서 <가스라이팅>에 가스라이터의 특징을 무려 31가지나 나열해놨다. 너무 많고 또 하나하나가 일상에서 만나는 보편적인 특징들이어서 과연 아마추어들에게 도움이 될까 의심이 된다. 몇 개를 추려본다. 1. 사과는 한다. 그러나 조건이 붙는다. “바람 피워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아내 노릇을 좀 더 잘했더라면........” 2.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3. 이간질을 즐긴다. 4. 고립시킨다. 5. 대놓고 아부한다. (초기 단계에 피해자를 덫으로 끌어들일 때만) 6. 공감하는 ‘척’한다. 7.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 가스라이터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아내가 귀가해 저녁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8.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 9. 약자에게 강하다.(웨이터 등) 10. 약점을 집중 공격한다. --->자존감 낮추기 11. 남과 비교한다. 가스라이터 부모는 자녀를 곧잘 비교한다. 12. 잘나가던 시절에 집착한다. 과거의 작은 성취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자랑하고 찬사를 요구한다. 13.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14. 딜레마에 빠뜨린다. 15. 외모에 집착한다.(자신과 상대방) 16. 공포를 조장한다. 17. 성질이 고약하다. 사소한 행동에도 불같이 화를 낸다. 18. 무책임하고 남을 탓한다. 19. 지속적으로 갈군다. 20. 자신의 행동을 피해자에게 투사한다.(바람을 피우면서 상대방을 의심한다.) 21.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22.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 23. 피해자가 쓰러져 있을 때 걷어찬다. 24.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25. 미끼를 던지고 낚아챈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기후대재앙은 진짜 오는가 - 이런 생각5
다음글 :	거짓말의 달인 리플리-소시오패스 판별법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