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는 성격장애일까 - 이런 생각10 김영국  (Homepage) 2023-09-25(월) 07:08:31, 56909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완전하고 건전한 사랑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누군가를 두고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그것은 칭찬일까, 흉일까, 아니면 가치중립일까. 나르시시즘은 자기애自己愛로 번역한다. 그러니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쯤 되겠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권장할 일인가, 경계할 일인가. 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이기주의자라고 폄훼한다.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내 이익보다 남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을 이타주의자라 하여 칭송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자식이나 학생에게 자기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온당한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금까지 나르시스를 부정적 인간형으로 평가해왔다. 나르시스는 자기를 사랑한 죄로 신의 형벌을 받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들이 바이블로 여기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는 나르시시즘을 자신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느끼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성격장애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명상 교육자 파브리스 미달은 이는 신화를 잘못 읽은 데서 연유한 오류라고 주장하며 신화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강의 신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시스를 두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이 아이는 자신을 몰라야 늙어서도 살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의 부모는 집에 거울을 없애는 등 그 아이가 자신을 모르도록 양육했다. ‘너 자신을 알라.’던 시대에 역행하는 교육이었다. 그는 자랄수록 아름다워졌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사랑에 빠졌다. 자신을 모르는 나르시스는 애타는 구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했다. 아메이니아스는 자살을 하고, 숲과 샘의 님프 에코는 탄식만 하다가 숲속에 메아리만 남기고 죽었다. 나르시스는 사냥 길에 목이 말라 샘물을 마시려다 샘에 비친 꽃미남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게 자신임을 알고는 더욱 거기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났다.   신화의 어디에도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없다. 중세를 지나면서 나르시스의 죽음을 신의 형벌로 해석했다. 그 이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급기야는 정신질환의 하나로 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브리스 미달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수선화로 부활했다고 보았다. 수선화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이므로 그의 부활은 신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미달 자신이 그 증거였다. 편측우성이라는 신체장애 때문에 모든 운동에 젬병이었고 성적도 저조하여 존재감 제로의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는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명상에 매달렸다. 어느 세미나에서 ‘나에게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라.’는 화두를 받고 끈질기게 명상한 끝에 자신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믿을 수 있었다. 그에 힘입어 남을 위하고 남을 사랑할 수도 있었다. 나르시시즘의 기적이었다. 그는 명상 교육자로서 나르시시즘의 전도사가 되었다. 수많은 언론에서 그를 두고 자기애를 고귀한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칭송하였다. 1970년대에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존감(Self-Esteem)의 열풍이 불었다. 심리적 문제의 모든 원인이 ‘낮은 자존감’에 있다고 보고, 부모의 양육, 학교의 교육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이른바 ‘자존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존감은 자아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아존중의 바탕은 자기 사랑이다. 세상의 사랑은 깨지기 십상이다. 특히 첫사랑은 실패하게 돼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첫사랑이 있다. 그것은 자기애다. 자존감을 교육하는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자존감의 황금률이다. 성격장애로 비하되던 자기애가 정신건강의 척도로 일컬어지는자존감의 필수요소로 등극하였다. 자기애의 극적인 반전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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