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12 - 행복 코스프레 김영국  (Homepage) 2023-10-08(일) 08:46:54, 61178

심리학의 초창기인 19세기 후반에 제임스-랑게 이론이 등장하였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제임스(1842~1910)와 덴마크 생리학자 칼 게오르그 랑게(1834~1900)가 거의 동시에 같은 이론을 제창하였다. 어떤 감정이 특정 신체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고, 신체변화가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지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니까 무서워진다는 이론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행동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이 이론에 기반을 두었다. 코스프레는 costume play를 일본인 특유의 축약과 발음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게임이나 만화 속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즐기는 일을 가리켰는데, 지금은 ‘흉내’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피해자 코스프레, 단식 코스프레, 거지 코스프레 등 표리부동한 언행을 꼬집을 때 사용된다. 주로 정치판에서 사용되는 바람에 더욱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을 때 행복한 척하는 ‘행복 코스프레’는 행복의 문을 따는 행복의 열쇠가 된다. 한국 땅에 와서 억울하게 대접받는 ‘코스프레’를 ‘행복’과 결합해보았다.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남자 대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은 낮고 안전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B그룹은 높고 아찔한 출렁다리를 건너게 했다. 건너자마자 평범하게 생긴 여성의 설문조사를 받게 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나중에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런데 전화를 한 남학생은 B그룹이 월등히 많았다. 몇 번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다. 전화를 한 남학생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대부분 그 여성의 매력에 끌렸다고 했다. 사실은, 아찔한 다리를 건너면서 심장박동이 크고 빨라진 것을 남학생들은 연애감정의 설렘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예뻐서  두근거린 것이 아니라 두근거림이라는 신체반응이 연애감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 같은 만화책을 두 그룹에게 읽게 했다. A그룹은 볼펜을 가로로 물고 읽게 하고, B그룹은 볼펜을 세로로 물고 읽게 했다. A그룹이 B그룹보다 훨씬 많이 만화가 재미있다고 반응했다. A그룹은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었고, B그룹은 불만에 찬 얼굴이었다. 가짜 미소의 힘이었다. 억지로 웃는 것도 실제 웃음의 90%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웃음치료’가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웃으면 뇌하수체에서 엔도르핀(중독성 없는 자연 진통제라고 한다.)이 분비되고, 부신에서 염증을 낫게 하는 화학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웃으면 동맥이 이완되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혈압 낮춤), 혈액 속의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의 양을 낮추어준다. 그런 점에서 곤궁했던 시절의 코미디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제목은 진실이다. 기운이 넘치면 그 기운에 어울리는 자세와 폼이 나오게 마련이다. 거꾸로 그런 자세, 그런 폼을 잡으면 기운이 생겨나고 덩달아 행복감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경계하고 경멸해마지않는 허장성세, 폼생폼사도 때로는 행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생이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하버드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드는 자세에 따라 에너지가 치솟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A. 에너지를 높이는 자세 high power poses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1. 책상에 다리를 뻗어 올리고 머리 뒤로 손깍지를 한 채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는 자세 2. 양손을 허리에 대고 꼿꼿이 선 채로 상대방을 노려보는 듯한 자세 B. 반대로 에너지를 낮추는 자세 low power poses로 두 가지 예를 들었다. 1. 구부정히 서서 팔짱을 끼고 바닥을 내려보는 자세 2. 고개를 숙이고 의기소침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 A 자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평소보다 20% 증가했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15% 감소한 반면, B 자세에서는 공격성과 자신감을 나타내는 테스토스테론이 10% 감소하고 코르티솔이 15% 증가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몸도 가라앉는다. 그 상태로 있으면 더 우울해지고 더 의기소침해진다. 그 감정에 몸을 맡기지 말고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상승한다. 한양대 박상미 교수는 이럴 때 최대한 빨리 기를 쓰고 일어나라고 권한다. “5 4 3 2 1 ! 일어나자!” 외치며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정리, 설거지, 양치질 등으로 몸을 움직이다가, 5분이라도 좋으니 산책을 해보라고 한다. 산책을 할 때는 억지로라도 반듯한 자세로 활기차게 걸어야 한다. 욕심을 내어 달리기를 잠시 하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천지개벽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뇌에서 엔도르핀, 엔케팔린 등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 감정이 치솟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뇌는 활기차게 행동하니까 진짜 그런 줄 착각한 것이다. 즐거우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우울하더라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순진한 뇌는 진짜 즐거운 줄 알고 행복 호르몬을 아낌없이 내보낸다. 콧노래도 좋고 소리 내어 부르면 더 좋다. 나는 산책 중에 적당한 볼륨과 박자로 노래를 불러 뇌를 놀려먹고 있다. 혼자서 차를 운전할 때도 좋고, 집에서 문을 닫아놓고 고성방가를 해도 좋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코인 노래방이 안성맞춤일 것 같다. 애창곡 10여 곡을 올려놓고 탬버린을 흔들며 목청껏 뿜어내면 웬만한 우울감은 말끔히 청소될 것이다. 몸이 가면 마음이 따라온다. 제임스-랑게의 이 이론을 활용하면 자신만의 행복 열쇠를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다.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마음이 어수선할 때 명상의 자세를 취하기만 해도 마음이 저절로 정돈될 때도 있다. 행복하지 않을 때 요가, 목욕, 악기 연주, 헬스장, 좋아하는 운동 등으로 행복 코스프레를 연출해 볼 일이다. 착하기만 한 우리의 뇌는 언제든지 속아줄 준비기 돼있다. 몸이 행복으로 가면 마음이 행복으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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