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14 - 심호흡 김영국  (Homepage) 2023-11-24(금) 07:43:03, 65479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슈테파니 슈탈- 수능 감독 때 일이다. 1교시 언어영역 답안지 인적사항 표기 시간이었다. 방송의 지시에 따라 수험생이 눈을 뜨고 주어진 사인펜으로 OMR 카드에 수험번호 등을 기표한다. 그런데 맨 앞줄의 수험생이 손을 발발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깨를 두드려 나를 보게 하고 심호흡을 세 번 하게 했다. 안정을 되찾은 수험생은 침착하게 기표를 했다. 1교시 끝나고 나에게 싱긋 웃으며 목례를 했다. 올해 둘째 손주가 수능을 치렀다. 할애비가 해준 유일한 응원이 심호흡이었다. 평소 우리의 호흡은 얕고 짧다. 긴장 상황에 맞닥뜨리면 호흡이 빨라진다. 그런 상황에 인간이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가쁜 호흡으로 온몸에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흡입된 산소를 곳곳에 빨리 배달하기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도 상승한다. 덩달아 근육도 긴장한다. 이런 조치는 뇌의 전두엽 판단이 아니고, 편도체가 동물적 감각으로 내린 비상조치다. 편도체는 뇌의 다른 부위를 셧 다운 시키고 모든 역량을 생존에만 집중한다. 국가에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부가 국회, 언론 등 국민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오랜 동안 야수 등으로부터 생존을 수시로 위협받으며 살아왔다. 인간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과학과 사회의 발달로 세상은 극적으로 안전해졌으나, 인간의 뇌가 그에 맞춰 진화하지 못하고 옛날 우리 조상들처럼 늘 긴장하고 있다. 사소한 상황에서도 편도체는 큰일이나 난 듯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횡포를 부린다.(이를 편도체 하이재킹이라 한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전두엽 등의 뇌 부위가 셧다운 된 상태에서 이성적 사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아노미 상태에서 탈출하는 수단 중 하나가 심호흡이다.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는 신체활동 중 인간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호흡이다. 가빠진 호흡을 깊고 길게 하면 비상상황이 종료된 줄 알고 심장박동, 근육긴장, 혈압상승 등이 정상화된다. 그러면 편도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나게 된다. 이렇게 심호흡은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래서 독일의 심리치료사 슈테파니 슈탈은 “호흡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심호흡을 ‘행복의 열쇠’ 반열에 끌어올린 소이연이다. 편도체 하이재킹 상태에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므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공포와 분노 상황에서 편도체가 자주 활성화되고 그럴 때 본의 아닌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편도체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터득하여 그것을 상시 장착하고 산다는 것은 아주 유능한 행복 지킴이를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스트레스 관리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러스 해리스는 심호흡을 두고 ‘감정의 폭풍 속에서 당신을 붙잡아줄 닻’이라고 했다. 심호흡이란 의식적으로 허파 속에 공기가 많이 드나들도록 하는 호흡법이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의 일상 호흡은 얕고 짧다. 그런 호흡으로는 온 몸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어 신체나 정신에 각종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 호흡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흉식호흡을 하는지 복식호흡을 하는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배에다 손을 얹고 숨쉴 때마다 배가 오르내리는지를 살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훈련으로 어릴 때의 복식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임신 출산을 겪은 성인 여성이 흉식호흡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복식호흡으로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것이 심호흡이다. 심호흡으로 신체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하버드 의대 네고로 히데유키 교수 팀은 각종 생활습관 질환 치료를 위해 448 호흡법을 개발했다.(<상체 밸런스 리셋> 참고) 감정조절용 심호흡은 대개 424, 444 호흡법을 권장하고 있다. 나는 424 호흡법을 따르고 있다. 4초간 들이쉬고, 2초간 멈추고, 4초간 내쉬는 것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내쉬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폐 속의 공기를 다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깊게 들이쉬어도 욕심껏 들어가지 않는다. 호리병의 물을 다 비우지 않고 새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심호흡을 3회, 혹은 6회나 9회를 권장하고 있다. 비상상황에서 심호흡을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심호흡을 몸에 붙여야 한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나, 신호 대기 중일 때 또는 탁 트인 바닷가나 산 정상에서 등 짬이 날 때마다 버릇처럼 심호흡을 연습해두면 비상상황(분노, 공포, 긴장 등 편도체가 하이재킹을 시도할 때)에서 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 태풍으로 들끓는 바다와 같은 내면, 사전에 막을 수도 있고, 혹시 때를 놓쳤더라도 알아차리는 순간 빠져 나오게 하는 수단이 심호흡이다. 이것을 연마하여 행복의 열쇠로 허리춤에 달고 다닐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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