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과학의 비밀을 캐다 송성수  (Homepage) 2015-02-23(월) 13:03:55, 8048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센터 엮음, <고전의 힘: 부산대학교가 선정한 고전 99선 해제> (꿈결, 2013), pp. 319-324에 게재된 글로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관한 해제입니다. ---------------------------------- 중국 과학의 비밀을 캐다 “우리는 근대 문명이 16-17세기의 갈릴레오 및 베살리우스와 같은 르네상스 인물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과 “지혜는 우리 서양에서 태어났다”는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통제에는 중국인들의 공헌이 있었으며, 그것은 위대한 것이었다. 하나의 민족이나 한 무리의 민족들이 과학의 발전에 독점적인 공헌을 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인간의 보편적인 형제애로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 모든 성취들이 인정되고 찬양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과학의 기원을 서양에서만 찾는다. 사실상 근대과학이 탄생한 지역도 서양이고,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과학도 대부분 서양과학이다. 이 때문에 세계 학계는 오랫동안 “동양에는 과학이 없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을 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이 조셉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이다. 니덤의 원래 전공은 생화학이었다. 그는 24살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로도 같은 대학에서 평생을 보냈다. 니덤은 과학 전반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과학을 통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다. 1930년경에 과학사에 입문한 그는 1937년부터 3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통해 중국의 과학전통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42년 영국문화원의 프로그램에 합류해 4년간 과학자문단으로 중국에서 체류했고, 그 후 2년간 파리에서 유네스코 자연과학부의 책임을 맡았으며,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1948년부터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니덤은 1976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을 퇴직한 후 동아시아과학사도서관을 설립했고, 그 도서관은 1983년에 니덤연구소로 재출범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1954년에 제1권이 발간된 이래 니덤이 죽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학문적 저술 작업이다. 이 책은 전체 7권 34책으로 계획되어 있다. 제1권은 중국의 언어, 지리, 역사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서론이고, 제2권은 니덤 특유의 관점이 강하게 담겨 있는 중국의 과학사상사이다. 제3, 4, 5, 6권은 각각 수학 및 하늘과 땅의 과학, 물리학 및 물리기술, 화학 및 화학기술, 생물학 및 생물기술에 대한 것으로 중국 과학의 성과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7권은 중국 과학의 사회적 배경을 다루는 결론에 해당한다. 현재 제1권 1책, 제2권 1책, 제3권 1책, 제4권 3책, 제5권 11책, 제6권 5책, 제7권 2책 등 모두 24책이 출간되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저술하는 작업은 처음에는 몇몇 중국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니덤 혼자서 진행했지만, 이후에는 각 분야의 전문 연구자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해당 분야를 집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니덤의 저술이 워낙 방대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도 발간되었다. 콜린 로넌은 <축약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4권으로 발간했는데, 그 중 두 권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 사상적 배경>(김영식·김재란 옮김, 까치, 1998), <중국의 과학과 문명: 수학, 하늘과 땅의 과학, 물리학>(이면우 옮김, 까치, 2000)이 그것이다. 또한 로버트 템플은 니덤의 대작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 100가지를 간추려 <중국의 재능: 과학, 발견, 발명의 3천년>을 출간했으며, 그 책은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과학세대 옮김, 까치, 2009)으로 번역된 바 있다. 모두의 인용문은 로넌의 축약본 중의 서론에서 옮긴 것이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중국 전통사회에 존재했던 과학과 기술의 거의 모든 분야를 정리, 분석, 평가해 놓은 일종의 백과사전과 같은 저술이다. 이 책을 통해 니덤은 중국이 매우 풍부한 과학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서양 이외의 다른 문화권에도 상당한 수준의 과학과 기술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의 본질이나 근대과학의 성격을 다시 새겨보게 한다. 니덤이 “모든 민족과 문화의 고대 및 중세 과학은 근대 과학의 대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들”이라고 비유했듯이, 근대 과학은 유럽적인 혹은 서양적인 과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세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니덤은 적어도 13-14세기까지는 중국이 서양보다 과학과 기술에서 앞서 있었으며,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적 과학과 기술이 중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세 가지 발명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했는데, 니덤은 그것들이 모두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니덤은 농업, 천문, 지도, 의학, 수학, 물리학, 수송, 음악, 전쟁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중요한 발견과 발명이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말미에는 중국의 발명․발견과 서구의 전래 사이의 시간차를 보여주는 도표가 제시되고 있다. 니덤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중국 과학이 초기에는 서양보다 우월했는데, 왜 그것이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것은 흔히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니덤은 중국 전통과학의 내부에서가 아니라 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에서 찾고 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중국의 관료제이다. 유교 자체가 자연세계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식층이 관료만을 희망함으로써 과학이나 기술과 같은 분야에 인재가 유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니덤은 중국 과학의 성취와 한계를 중심으로 중국 과학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니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은데,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니덤은 과학이 하나의 보편적인 구조를 따라 진보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학의 역사를 바라보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니덤이 책을 저술하는 방식은 물론 과학을 분류하거나 번역어를 선택하는 데에도 반영되어 있다. 둘째,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도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실상 우리는 불이 나지 않은 집에 가서 왜 불이 나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과 서양의 과학이 왜 다른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셋째, 니덤은 중국 중심의 관점에 편향되어 동아시아 과학사 전체를 바라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측우기나 금속활자와 같은 한국 고유의 유산에 대해서도 그것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니덤이 중국의 문헌이나 학자에만 의존한 채 다른 지역의 전문가와 충분히 교류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니덤의 저작이 갖는 역사적 의의나 학술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세기의 학자 중에 니덤처럼 원대한 기획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연구를 수행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니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학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실제로 중국과학사를 전공하는 연구자 집단도 형성될 수 있었다. 비록 니덤이 제기한 질문이 적절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동양과 서양의 과학을 비교하는 작업이 촉진되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중국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인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인 셈이다. 니덤은 1900년에 태어나 199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로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이외에도 <위대한 적정(滴定): 동양과 서양의 과학과 사회>, <중국의 학자와 장인>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천상의 침들: 침과 뜸의 역사 및 설명>, <천상의 시계: 전통 중국의 위대한 천문시계들>, <서운관의 천문의기와 시계에 관한 기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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