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청년 다윈 송성수  (Homepage) 2015-02-03(화) 13:24:34, 6508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센터 엮음, <고전의 힘: 부산대학교가 선정한 고전 99선 해제> (꿈결, 2013), pp. 618-623에 게재된 글로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에 관한 해제입니다. ----------------------------------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청년 다윈 “젊은 박물학자에게는 머나먼 이국으로의 여행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 새로운 사물을 만났을 때의 흥분과 성공할 수 있는 기회 때문에 더욱 활발히 움직이게 된다. 더구나 수많은 개별적인 사실에 대한 흥미는 금방 사라지므로, 비교하는 습관을 통해 일반화하게 된다. 반면에, 한곳에서 잠시밖에 머물지 않는 여행자의 묘사는 대게 세밀한 관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스케치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 지식의 크나큰 부족함을 부정확하고 피상적인 가설로 채우려는 끊임없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비글호 항해기(The Voyage of the Beagle)>의 말미에서 위와 같이 썼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항해기로 평가되고 있는 <비글호 항해기>는 1839년 초판에 이어 1845년에 2판이, 1860년에는 3판이 출간되었다. <비글호 항해기>는 1859년에 발간된 <종의 기원>을 향한 항해기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마친 후에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히려는 탐구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30살 때 <비글호 항해기>를 썼고, 50살 때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 <비글호 항해기>는 <종의 기원>에 비해 훨씬 경쾌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종의 기원>에서 원숙한 과학자 다윈을 접할 수 있다면, <비글호 항해기>에서는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 다윈을 만날 수 있다. 다윈이 어릴 적부터 위대한 과학자의 기질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의가 산만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다윈은 의사이던 아버지의 바램대로 1825년에 에든버러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다윈은 의학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아버지는 의사 대신에 목사를 권유했다. 다윈은 1827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신학부에 입학했지만 신학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대학에서 다윈을 사로잡았던 것은 헨슬로 교수의 식물학 강의였다. 헨슬로는 다윈의 잠재력을 알아보았고 다윈은 헨슬로의 야외채집에 항상 따라다녔다. 그래서 다윈에게는 “헨슬로 교수의 그림자”라는 별명을 붙여졌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831년 8월 29일에 다윈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헨슬로가 보낸 편지였다. 헨슬로는 다윈에게 영국 해군의 조사선인 비글호의 세계 여행에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비글호의 선장인 피츠로이는 지루한 여행을 함께 할 젊은 박물학자를 원했고, 헨슬로는 다윈을 적격자로 추천했던 것이다. 다윈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의 도움으로 비글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때가 1831년 12월 27일이었고, 비글호는 약 5년 뒤인 1836년 10월 2일에야 영국으로 돌아왔다. 다윈은 22살부터 27살까지 자신의 청춘을 비글호 항해에 바쳤던 것이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조사한 내용을 무려 18권에 달하는 공책에 꼼꼼히 기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출간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비글호가 항해한 경로를 따라 총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통해 동물, 식물, 화석, 지질 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은 물론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다. 상어를 죽인 가시복, 노예들의 비참한 생활, 멸종된 말의 이빨, 거대한 동물 화석, 광부들의 근무 조건, 지진의 원인, 조개껍데기들이 풍화된 흔적, 해초를 먹고 사는 바다 도마뱀, 뉴질랜드 여자의 장례식, 석회질을 띤 나무, 산호초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이 심오하고 정제된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비글호 항해를 통해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몇몇 가설을 제안했다. 비글호 항해는 다윈이 진화론을 정립하는 데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을 선사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통해 그 동안 화석으로만 접했던 몇몇 동물들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고, 같은 종의 경우에도 지역에 따라 서로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관찰로, 다윈은 겨우 수십 마일 떨어진 여러 섬들에서 다른 종류의 동물상과 식물상이 분포하고 있음을 보았다. 특히, 그의 흥미를 끈 것은 “핀치”라는 새의 모양이 섬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는 점인데, 훗날 다윈의 후예들은 갈라파고스의 핀치에게 “다윈의 핀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관찰로부터 다윈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선, 종이 시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점을 계속해서 확인하였고, 그것은 다윈으로 하여금 종의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지역에 따른 종의 차이는 진화가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는 점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가 거의 흡사한 섬들에 서로 다른 종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종의 진화가 단순히 자연적 조건에 의해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였다. 비글호 항해를 마친 다윈에게는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수용할 만한 사실이 되었고,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즉 진화의 메커니즘이 문제가 되었다.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단서를 동식물 사육가들의 경험에서 찾았다. 그들은 인위선택을 통하여 인간의 필요에 적응하는 품종 쪽으로 종의 진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다윈은 인위선택에 대한 유비로 진화의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통해 자연선택의 수단으로 경쟁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로써 다윈 진화론의 골자인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가 정립되었다. 이처럼 다윈은 1830년대 말에 진화론의 핵심적 주장을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지만, 약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주장을 널리 공개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자신의 주장이 가진 약점을 보완하려는 학문적 신중함과 진화론이 야기할 종교적 차원의 논쟁에 대한 두려움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다윈은 1858년에 자신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월리스의 편지를 받았고, 그것이 촉매제가 되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이처럼 비글호 항해는 다윈에게 진화론의 요람으로 작용했다. 또한 비글호 항해를 매개로 다윈은 영국 과학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항해 도중에 계속해서 연구결과를 본국에 보고했기 때문에 귀국할 즈음에는 상당히 유명해져 있었다.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던 아버지가 다윈을 인정하게 된 것도 비글호 항해 덕분이었다. 다윈의 아버지는 아들을 과학자의 길로 인도해 준 헨슬로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다윈 자신에게는 1839년이 매우 특별한 한 해였을 것이다. 그 해에 그는 <비글호 항해기>를 출간했고,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외사촌이던 엠마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에 다윈의 진화론은 진화의 증거, 유전의 문제, 과학과 종교, 사회진화론, 사회생물학 등을 매개로 숱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다윈을 논의하고 있는 것도 그만큼 다윈이 풍성한 식탁을 차려놓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윈은 1809년에 태어나 188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로는 <비글호 항해기>와 <종의 기원> 이외에도 <사육 동식물의 변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식물의 교배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비글호 항해기>에 대한 우리말 번역본으로는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장순근 옮김, 가람기획, 2006)와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권혜련 외 3인 옮김, 샘터,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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