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을 개방한 카리스마 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 송성수  (Homepage) 2021-05-12(수) 10:04:22, 18228

<그림> 과학연구의 제도적 정착에 기여한 카리스마, 유스투스 리비히 오늘날의 과학은 제도화된 활동이다. 과학의 제도화란 과학 활동이 지속적이고 공식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과학의 제도화는 19세기에 대학에서 시작되어 20세기에는 기업과 정부로 확대되었다. 과학사학자들은 19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 과학‘교육’이 제도화되었으며 19세기 중엽에 독일에서 과학‘연구’가 제도화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학에서 과학연구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 바로 독일의 화학자인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다. 화학을 좋아한 소년 리비히는 1803년에 프랑크푸르트의 근처에 있는 다름슈타트에서 10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료품과 약품을 취급했던 사람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화학실험을 좋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염료나 약제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곤 했다. 리비히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일을 거들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학에 친숙해질 수 있었다. 리비히는 학창 시절에 화학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과목에서는 낙제 점수를 받았다. 성적이 최하위권을 맴돌자 선생님은 리비히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선생님이 리비히에게 화를 내면서 “자네는 커서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서슴없이 “화학자가 되겠습니다.”고 답했고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리비히는 14살이 되던 1817년에 가까운 동네에 있는 약제사의 도제로 들어갔다. 약제사의 일을 배워 나중에 독립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리비히에게는 약초를 자르고 환약을 만드는 단순한 일이 재미가 없었다. 결국 리비히는 도제 생활을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도와야 했다. 리비히는 훗날 자신이 약제사 몰래 실험을 하다가 화학물질이 폭발하는 바람에 쫓겨났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전기에 따르면, 아버지가 수업료를 낼 수 없어서 리비히가 도제 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리비히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도 계속해서 화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본 대학의 화학 교수인 카스트너(Karl Wilhelm Kastner)를 알게 되었다. 카스트너는 리비히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차렸고 리비히는 카스트너의 조수가 되었다. 리 비히는 17살 때인 1820년에 본 대학에 입학했으며 1년 후에는 카스트너를 따라 에를랑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비히는 대학 시절에 열심히 공부했지만, 당시에 유행했던 자연철학주의(Naturphilosophie)에는 상당한 불만을 가졌다. 리비히가 보기에, 자연철학주의는 추상적인 사변만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했으며 실험적 방법을 무시했던 것이다. 한번은 리비히가 카스트너에게 광물분석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는데, 카스트너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리비히는 크게 실망했다. 리비히는 “독일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화학 교수가 이 모양이니 독일에서는 자신을 가르쳐 줄 선생이 없다”고 탄식했다. 리비히는 실망과 낙담 속에서 다름슈타트의 집으로 돌아왔고 화학에 대한 서적을 읽거나 폭약에 대한 실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럴수록 리비히에게는 당시의 화학 선진국이던 프랑스나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러한 소문에 접한 다름슈타트의 대공 루돌프 1세는 자신이 장학금을 줄 테니 외국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라고 격려했다. 프랑스에서 배운 첨단 화학 리비히는 1822년에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파리에서 만난 알렉산더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의 소개로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 진학해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의 특별 조교가 될 수 있었다. 훔볼트는 당시의 독일을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게이뤼삭의 절친한 친구였다. 훔볼트는 독일의 사변적 철학이 실험과학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을 개탄하면서 “손을 적시지 않는 과학자”에 대한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훔볼트는 리비히와 같은 젊은 과학자들이 독일의 과학을 개혁해 줄 것을 기대했다. 리비히도 자연철학주의를 “19세기의 흑사병”으로 부르면서 이에 동조했다. 리비히는 게이뤼삭의 지도 덕분에 정연한 이론과 풍부한 실험을 맛볼 수 있었다. 리비히는 소르본 대학에서 정량적인 화학분석법을 배우면서 프랑스에 온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겼다. 1824년에 그는 뇌산은의 조성을 분석해 과학아카데미에 발표했다. 뇌산은은 19세기 초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폭발성을 가진 위험한 물질이기 때문에 깊이 연구되지 않았다. 리비히는 신중한 실험을 바탕으로 뇌산은이 은, 산소, 질소, 탄소의 한 원자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에를랑겐 대학은 불과 19살이던 리비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리비히가 뇌산은의 조성을 분석하는 데 성공하자 게이뤼삭은 크게 기뻐해 리비히와 함께 춤을 추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리비히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게이뤼삭의 연구실에서 보냈던 시간을 저는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분석을 했을 때면 게이뤼삭은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테나르(Louis Thénard, 게이뤼삭의 스승)와 내가 뭔가를 발견했을 때마다 같이 춤을 추었듯이 이제 나랑 춤을 추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춤을 추곤 했습니다.” 선생과 제자가 환희의 순간을 즐기는 장면이 상상되는 대목이다. 리비히가 뇌산은의 조성을 밝힌 직후에 독일의 뵐러(Friedrich Wöhler)는 뇌산은과 동일한 조성을 가졌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 시안화은에 대해 보고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상대방의 실험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1826년에 리비히는 뵐러를 방문해 충분히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실험을 되풀이했지만, 결과는 이전과 같았다. 결국 두 사람의 교류로 인해 이성질체(isomer, 분자식은 동일하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물리화학적 성질을 달리 하는 물질)의 존재가 명확해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리비히와 뵐러는 매우 친해져서 평생 동안 절친한 동료로 지냈다. 기센 대학의 화학실험실 리비히는 1824년에 21세의 젊은 나이로 기센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알렉산더 훔볼트의 추천에 의해 헤세 대공이 전격적으로 리비히를 교수로 임명했던 것이다. 리비히는 교수가 되면서 실험 위주의 교육을 정착시키기 위해 대학 당국과 싸워 가면서 실험실을 확충했다. 특히 리비히는 다른 교수와 달리 실험실을 학생들에게 개방했다. 학생들이 실험에 빨리 친숙해지고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리비히는 자신의 교육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의 학생들은 스스로 연구하면서 배우고 익힌다. 나는 문제를 주고 연구의 경과를 감독하는 데 그치며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학생으로부터 각자가 연구한 결과를 듣거나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해서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 각자는 스스로 연구를 해 나갈 의무가 있다.” 리비히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강의할 때나 실험을 지도할 때나 학생들의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는 유창하지는 못했지만 신들린 강의를 해 학생들의 혼을 빼앗았다. 또한 그는 수시로 세미나(seminar)를 개최해 학생들이 최신 연구 성과를 숙지하고 독창적인 연구의 방향을 잡도록 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논문을 작성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사람도 리비히였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독특한 인격에 도취되도록 만들었고, 많은 학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리비히를 따랐다. 어떤 제자는 리비히를 장군에 비유했다. “모든 위대한 장군이 그랬듯이, 그는 집단정신을 타고났고 그것을 지켰다. 리비히는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지휘관이자 영혼이었다. 그를 진실로 따르는 이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존경받았고 그 이상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리비히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강했던지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리비히가 처음으로 무수산(無水酸)을 합성한 후에 제자 몇 명에게 소매를 걷고 팔을 내놓아 보라고 했더니, 그들은 순순히 그 부식성 액체를 살에 떨어뜨리게 했다는 것이다. 리비히의 실험실은 날로 번창했다. 1825년에는 약제학(藥劑學)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1835년에는 화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학생들로 대체되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자신의 전공을 바꾸어 리비히의 실험실에 온 학생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호프만(August Wilhelm Hofmann)은 법학과에서 화학과로, 케쿨레(Friedrich Kekule)는 건축과에서 화학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들은 리비히의 지도로 정량적인 실험 과정을 체계적으로 익히면서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와 대학 당국도 리비히 실험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리비히 실험실은 전문적인 화학자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고, 그 곳을 거쳐 간 화학자는 대략 450명에 이르렀다. <그림> 19세기 중엽에 리비히 실험실을 표현한 그림 리비히는 유기화학을 중심으로 화학에 대한 학술지를 정비하는 작업도 추진했다. 그는 1832년부터 『약학연보(Annalen der Pharmacie)』의 편집인을 맡았고, 1840년에는 그 명칭을 『화학 및 약학 연보(Annalen der Chemie und Pharmacie)』로 바꾸었다. 일명 ‘리비히 연보’로 불린 『화학 및 약학 연보』는 독일의 화학을 대표하는 학술지로 자리 잡았으며, 1875년에는 『화학연보(Annalen der Chemie)』로 거듭났다. 유기화학에서 농화학으로 리비히는 생전에 3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그는 뇌산 화합물을 시작으로 다양한 화합물을 연구해 유기화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뵐러와의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유기화합물이 산소, 수소, 질소, 탄소 등과 같은 몇 가지 단순한 원소의 무수한 결합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리비히는 마치 원자와 같이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유기화합물인 기(基)에 관한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기도 했다. 리비히는 1831년경에 유기화합물의 조성을 알아내는 간단한 분석법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오늘날 ‘리비히 분석법’으로 불린다. 리비히 분석법은 시료를 산화구리와 함께 연소관 내에서 가열하고, 그때 생기는 이산화탄소와 물의 중량으로 미지의 물질이 가진 조성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리비히 분석법을 사용하면 몇 시간 내에 해당 물질의 정확한 조성을 분석할 수 있다. 1838년경부터 리비히는 유기화학을 넘어 생화학과 농화학으로 시야를 넓혔다. 그는 식물이 화학반응을 통해 토양에서 광물질을 섭취한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밝혔다. 리비히가 1840년에 집필했던 『농업과 생리학에서의 유기화학의 응용』은 9판까지 간행되었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되기도 했다. 농화학 분야에서 리비히의 업적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화학비료다. 리비히는 질소, 인산, 칼륨이 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질소가 함유된 인공적인 비료를 개발해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리비히는 암모니아로부터 질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후 초보적인 화학비료를 고안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상업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리비히의 아이디어는 1908년에 하버(Fritz Haber)가 효과적인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리비히는 독일의 식물학자 슈프렝겔(Carl Sprengel)이 제안한 ‘최소량의 법칙’을 대중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식물 생장에 필요한 여러 원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비록 다른 원소들이 충분해도 그 식물은 부족한 원소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질소, 인산, 칼륨, 석회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이 법칙은 조직학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우수한 조직원들을 잘 활용하는 것보다는 소외된 조직원들을 잘 제어하는 것이 전체 조직의 성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림> 최소량의 법칙을 설명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리비히의 물통. 여러 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만든 나무 물통이 있을 때, 나무 물통에 채워지는 물의 양은 가장 낮은 나무판에 의해 결정된다. 리비히는 1837년에 리버풀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의 모임에서 농업에 대한 화학의 응용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이어 1842년에 영국을 다시 방문해 정치계와 농업계의 주요 인사를 만났는데, 그 만남을 계기로 영국에서는 화학에 특화된 대학을 설립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결국 1845년에는 각종 기부금을 바탕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을 학장으로 하는 왕립화학대학(Royal College of Chemistry)이 설립되었다. 리비히는 그 대학의 교수 한 명을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자신의 유능한 제자인 호프만을 보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보잘 것 없었던 독일의 화학이 이제는 영국에 교수를 보낼 정도로 발전했던 것이다. 뵐러와의 돈독한 우정 리비히의 생애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뵐러와의 우정이다. 그들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면서 처음에는 싸우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었다. 리비히가 정열적이고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면 뵐러는 냉정하면서 세심한 사람이었다. 리비히의 제자인 호프만은 두 사람의 결합을 보색(補色)에 비유하곤 했다. 그들은 40년이 넘게 우정을 유지했으며 1,500통에 달하는 편지를 교환했다. 독일 사람들은 문학자의 우정으로 괴테와 실러, 과학자의 우정으로 리비히와 뵐러의 경우를 들고 있다. 리비히는 독일의 과학과 농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845년에 남작이 되었다. 1852년에 그는 막시밀리안 2세의 초청으로 27년 동안 살았던 기센을 떠나 뮌헨으로 갔다. 막시밀리안 2세의 과학 자문을 담당하면서 뮌헨 대학을 개혁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당시에 그는 농업과 건강에 관한 책들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으며, 대중을 위한 특별강연도 많이 했다. 1858년에는 바바리아 과학․인문학 아카데미(Bavarian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ies)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리비히는 1873년에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70세의 삶을 마감했다. 많은 제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가장 슬퍼한 사람은 뵐러였다. 뵐러도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가 1882년에 친구의 곁으로 갔다. 뵐러의 관 위에는 고인의 희망에 따라 월계관을 쓴 리비히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 송성수의 ‘네이버 지식백과’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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