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송성수  (Homepage) 2009-06-18(목) 08:54:13, 3579

내일(6월 19일, 금)에 부산일보 과학칼럼에 게재될 글입니다. ---------------- 인류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로는 계급, 인종, 성이 거론된다. 이러한 주제들을 생각해보면, 세상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 되는 집단이 충분히 고려되거나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인류가 계급, 인종, 성과 결부된 수많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성차별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조치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지만, 여성의 활동은 실제보다 과소대표되는(underrepresented)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음악가나 요리사의 경우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많지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특급 호텔의 주방장은 거의 남성이다. 과학기술자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현실 세계에서 여성 과학기술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으며, 교과서나 대중매체에서 여성 과학기술자를 접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200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구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4.9%로 집계되고 있다. 과학기술자 10명을 만나도 여성 과학기술자는 그 중 1～2명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기술활동에서 여성의 지위는 주변성으로 집약되고 있다. 여성은 과학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으며, 과학기술계에 진입했다 할지라도 결혼과 출산으로 과학기술활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남성 노동자의 규모는 연령을 고려할 때 정규분포의 형태를 보이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M자형을 그린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여성 과학기술자는 상층부로 갈수록 숫자가 감소하는 누수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상층부에 진입한 이후에도 보이지 않은 장벽, 즉 유리천장(glass ceiling)의 존재를 느낀다. 그렇다면 여성 과학기술자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최근에 여성계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는 논점은 “성주류화”(gender-mainstreaming)이다. 그것은 젠더의 관점을 모든 정책 과정에 통합하는 것으로서 19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 공식적인 행동강령으로 수용된 바 있다. 과학기술의 경우에는 유럽위원회가 2002년에 “과학기술에서 성주류화”를 정책 기조로 설정한 후 여성의 과학기술 진출 촉진, 여성 과학기술자의 역량 제고, 여성 과학기술자의 발전잠재력 확충 등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부터 여성 과학기술자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2000년에는 여성과학자 연구개발 전담지원사업이 시작되었고, 2001년에는 여학생 친화적 과학교육 프로그램의 실시, 올해의 여성과학자상 제정, 여성과학기술인력 DB 구축,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목표제의 도입 등이 이루어졌다. 이어 2002년에는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그 법률에 의거하여 2004년에 기본계획이 마련되면서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omen in Science and Technology, WIST)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는 현재의 과학기술활동이 지속될 경우에는 여성과 같은 소수자집단이 참여할 기회가 계속해서 제한될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출발선상에서 이미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사실상 여성이 과학기술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증가하고 있는데 여성이 과학기술자로 활동하기 위한 장벽이 여전히 높다면, 그것은 열심히 키운 아까운 인재를 놓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와 함께 여성 과학기술자들이 종종 남성과는 다른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과 관점을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은 여성이 본질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남성들과 다른 환경과 가치관을 경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과학기술자의 존재는 과학기술이 더욱 창의적이고 풍성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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