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탄의 교훈 송성수  (Homepage) 2009-07-21(화) 09:14:15, 3613

이번 주 금요일(7월 24일)에 부산일보 과학칼럼에 게재될 글입니다. ---------------- 1945년 7월 16일은 맨해튼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 뉴멕시코 주 앨라모고도의 사막에서 원자탄 폭파 실험이 이루어졌던 날이다. 그 실험에서 원자탄은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TNT 2만 톤 수준의 폭발을 일으켰다.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서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들었던 페르미는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다”는 말로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원자탄 실험 후에 열린 대책 회의에서는 투하시간, 장소, 일정 등이 마련되었다. 결국 1945년 8월 6일에는 농축우라늄으로 제조한 “꼬마”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고 8월 9일에는 플루토늄 원자탄인 “뚱보”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일본은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원자탄의 투하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45년에 약 14만 명이었으며 다음 5년 동안에는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자탄의 개발과 투하는 과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맨해튼 계획은 거대과학(big science)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맨해튼 계획에는 미국의 대학, 연구소, 산업체, 군대 등이 총동원되었으며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12만 5천명의 인원과 20억 달러라는 자금이 소요되었다. 과거의 과학활동이 몇몇 개인에 의존하는 산발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던 반면, 맨해튼 계획에서는 원자탄 제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체계적으로 협동연구를 수행했던 것이다. 또한 원자탄 개발은 정부가 과학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과학은 원자탄과 같은 국방연구를 매개로 정책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할 중요한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에 과학연구개발국을 맡았던 부시는 1945년에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과학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을 주문하였고, 그것은 20세기 후반에 여러 국가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원자탄을 매개로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원자탄 투하는 과학이 가진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와 함께 원자탄 투하는 과학이 가진 양면성이 드러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과학은 진보의 상징이자 풍요의 원천으로 찬양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지만, 원자탄을 비롯한 전쟁무기를 매개로 과학의 역기능이 본격적으로 인식되고 비판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원자탄의 개발과 투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 심각하게 논의되는 마당을 제공하였다. 원자탄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행동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실라르드는 1939년에 아인슈타인을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어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산파역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독일이 원자탄 제조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45년 여름에 프랑크와 함께 많은 과학자들을 결집하여 원자탄 투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독일에서 원자탄 개발의 책임을 맡았던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회고록인 <부분과 전체>에서 일종의 방해공작을 전개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치가 원자탄을 보유하게 되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태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부분과 전체>에는 과학과 사회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고자 하는 과학자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원자탄과 관련된 과학자의 목록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핵분열 현상을 발견했던 한은 자신의 발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크게 괴로워했다. 입자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했던 로렌스는 원자탄이 전쟁을 조기에 종료시켜 희생자를 줄였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원자탄 독점이 야기할 문제점을 곰곰이 생각했던 푹스는 1944년부터 소련에 맨해튼 계획의 내용을 보고하는 스파이 노릇을 했다. 이처럼 원자탄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구체적인 행동방식은 개인에 따라 달랐지만, 당시의 과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원자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야 했다. 만약 내가 1945년 부근에 활동했던 과학자였다면 원자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 이것은 과학의 위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가 두고두고 숙고해야 할 질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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