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초(不肖), 부실(不實) 기업 김정식  (Homepage) 2009-07-29(수) 06:57:25, 3525

불초(不肖)   “불초한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주신 데 대해…”, “불초한 사람이지만 특단의 지지를 해 주시고…”, “부족한 재주와 능력의 불초를 여러분이 도와 달라.” 등의 말은 모두 김대중 전대통령의 말이다.   ‘불초’의 ‘초(肖)’는 ‘닮을 초, 본받을 초, 유사할 초'로, '불초(不肖)'하면 훌륭한 아버지와는 닮지 않은, 본받지 못한 못난 아들이란 뜻이다. 그러니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대해 그 아들이나 손자만이 써야 하고, 임금에 대해 신하만이 쓸 수 있다.   역사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도 독화살을 맞고 깨어난 이방원이 중신들 앞에서 “불초 소생이 하늘의 도움으로 소생해…”하였고, 하륜(河崙) 대감이 원로 대신들에게 “모든 게 불초 소생의 잘못”이라 했고, 대제학 이직(李稷)은 하륜에게 “불초 소생을 학문의 수장으로…” 등의 예가 나온다. 여기에 대신할 말은 ‘불민한 이 사람’, ‘미욱한 이 사람’, ‘우매한 이 사람’ 등이 있다.     부실(不實) 기업   “부실(不實) 기업 정리”, “몸도 부실(不實)한데 한 달쯤 쉬어라.” 등에 쓰인 ‘부실, 부실하다’는 ‘실속이 없고 사물의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다.’, ‘몸이나 마음이 옹골차지 못하고 약하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런데 이 한자어 ‘부실(不實)’을 ‘불실’로 잘못 읽는 경우가 많다.   ‘不(아니 불)’은 [불]과 [부]의 두 음으로 읽히는 한자다. 곧 ‘불가(不可), 불리(不利), 불초(不肖), 불행(不幸)’ 들에서는 [불]로 읽히나, 다음에 ‘ㄷ’이나 ‘ㅈ’으로 시작하는 말이 이어질 때는 ‘ㄹ’이 떨어진 형태인 [부]로 소리낸다.   ‘ㄷ’ 앞에 ‘ㄹ’이 떨어진 대로 적는 말에는 ‘부단(不斷), 부당(不當), 부도덕(不道德), 부동(不動), 부득이(不得已)’ 들이 있고, ‘ㅈ’ 앞에서 ‘부’로 적는 말에는 ‘부자유(不自由), 부정(不正), 부조리(不條理) 부족(不足), 부주의(不注意)’ 들이 있다.   이 ‘不’자가 ‘ㅅ’을 만나면 ‘ㄹ’음이 더욱 강해져 ‘불순(不純), 불시(不時)’ 들은 [불쑨], [불씨]로 발음된다. 그런데 유독 ‘부실(不實)’만은 [부]로 소리내며 적고 있다. 아마도 [불실]로 발음하기가 어려우니 [부실]로 많이 쓰다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현실 발음을 중시하여, [부실]로 읽고 적는 것이 옳을 것이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뒤친 말투(번역체)
다음글 :	사이버 공간에서 변질된 우리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