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용어를 토박이말로 김정식  (Homepage) 2009-03-10(화) 20:49:37, 3441

‘전문 학술 용어는 어려워야 권위가 선다.’, ‘우리 말글은 학문하는 데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따위의 생각을 가진 이가 많으며, 한글만 쓰기가 학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난을 하는 이도 있다. 이런 까닭으로 오늘날 우리 나라의 전문 학술 용어는 거의 모두가 한자말․ 서양말이다.   훈민정음 창제 때, 사대부들의 반대 상소문에 <언문은 학문(성리학)에 방해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봉건적․사대적인 그들은  ‘학문’을 내세우며 우리 말글을 천대했던 것이다. 이런 폐습이 아직도 남아, 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 한문을 번역도 없이 인용하거나 어려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   또, 일본 사람들이 서양 학문을 들여올 때 한자말로 번역한 것을 직수입해 쓰는 것도 많다. 이런 현상 뒤에는 우리와 일본이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한다는 환상이 도사리고 있다. 한글만 쓰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이런 이유를 내세우는 이들이 많다.   오늘날 지식의 양은 과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또, 많은 지식을 외국에서 들여온다.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고 애쓰지 않고 외국말을 죄다 그대로 들여온다면, 우리말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 말글을 학술 용어로 널리 쓰이도록 가꾸어 내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이다.   한때 초·중·고 교과서에 쓰던 용어들, ‘나뉨수,  숨골, 잎파랑이, 구부리기, 표팔기’ 등도 ‘피젯수, 연수, 엽록소, 만곡 작업, 발매’로 바꿔 쓰고 있다. ‘쑥돌, 횟돌, 뻘돌, 자갈돌’ 등의 좋은 토박이말을 쫓아내고 ‘화강암, 석회암, 이암, 역암’ 따위의 한자말을 대신 앉혀 놓았다.   ‘세로자르기, 골라사기’는 학문에 방해되고, ‘수직 절단, 선택 구매’라야 학문 발전이 되며, ‘말맛, 힘’은 안 되고 ‘뉘앙스, 파우어’라야 된다는, 신판 사대주의자들의 이 그릇된 생각이 국어를 흔들고 있다. 쉬운 우리말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경우도 굳이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학문을 기피하고 청소년들이 공부를 꺼려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교재에 쓰인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학술 용어를 쉽게 고쳐볼 생각은 않고, 한자 공부를 안 해서 학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3년 9월 5일 박원홍 의원 외 84명의 국회의원들이 한자 교육 진흥 법안을 발의한 것이 그 한 예다. 한자 교육과 한자 사용 확대를 위해서 한자 교육 개발 진흥원이란 기관을 만들어 한자 교재 개발과 한자 검정 시험을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지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얼개가 이렇게 비뚜러지고 얼빠져 있으니, 너무 안타깝다.   <전문 학술 용어는 나날말(일상어)과 달리 어렵고 고상해야 한다.>는 그런 허영심과 특권 의식 때문에 우리의 교육은 어려운 한자말과 외래말 가르치기가 되어 버렸다. 학문과 문화를 내세우며 야만스럽게 우리 말글 천대를 일삼을 때는 아니다.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외래 문화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막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주체성을 가진 학자들이 모여 전문 학술 용어부터 다시 검토하여 순수한 우리말 용어를 찾고 만드는 작업이 각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하겠다.              ◈ 살려 쓸 우리말 용어(1)    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광복 직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일하시면서 새 교과서를 만들 때 일본투 한자말을 몰아내고 순수 우리말 용어를 많이 찾고 만들어 실으셨다.   그 후 1960년대부터 우리말 용어가 차츰 한자말로 바뀌었는데, 특히 1982～83년 초등학교 교과서 전면 개편 때 ‘자연’ 교과서가 가장 두드러졌다. 한자말 용어라야 학문이 되는 줄 알던 일부 얼빠진 학자들 때문에 수많은 학생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가? 지금이라도 살려 쓸 용어를 찾아 쓰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살려 쓸 용어 모음 <( ) 안은 현재 쓰는 용어> ☆ 인체 관련 용어 큰골(대뇌)   작은골(소뇌)   숨골(연수)     등골(척수)   살갗(피부)    힘살(근육)     피(혈액)        피돌기(혈액순환) 염통(심장)    핏줄(혈관)     숨쉬기(호흡)    귀청(고막) 밥통(위)       밥줄(식도)     작은창자(소장)   큰창자(대장) 막창자(맹장) 샘창자(십이지장)  곧은창자(직장)  오줌보(방광) 오줌길(요도) 오줌관(요관)   가로막(횡경막)    뼈마디(관절) 숨관(기관)    숨관가지(기관지)  날름막(판막)  목뼈(경추골) 머리뼈(두개골)   궁둥뼈(좌골) ☆ 영양소 기름기(지방)  녹말(함수탄소)  흰자질(단백질) ☆ 식물의 구조와 기능   잎파랑이(엽록소)  김내기(증산작용)   해굽성(향일성)   땅굽성(향지성)     녹말만들기(광합성, 탄소동화작용) ☆ 지구과학 단원 땅거죽(지표)  땅껍질(지각)    큰물(홍수)    사리(만조)   조금(간조)    바닷바람(해풍)  뭍바람(육풍)  쇠붙이(금속) ☆ 바위 이름 바위(암석)   모랫돌(사암)  불에된바위(화성암)  쑥돌(화강암) 물에된바위(수성암, 퇴적암)  변해된바위(변성암)  횟돌(석회암) 변쑥돌(편마암)   뻘돌(이암)    자갈돌(역암)      ◈ 살려 쓸 우리말 용어(2)   초등학교 과목 이름 ‘셈본’을 ‘산수’로 바꾸자, 교과서에도 많은 낱말들이 한자말로 바뀌어 버렸다. 특히 도형에 관련된 이름들이 많이 바뀌었다. 개념이 달라진 용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개념과 뜻이 모두 같은 것은 우리말을 살려 써야 할 것이다.        *살려 쓸 용어 모음<( ) 안은 현재 쓰는 용어> 나란하다(평행하다)  나란히꼴(평행사변형) 맞모금(대각선) 맞선꼴(대칭도형)    펼친그림(전개도)     줄인자(축척)   줄인그림(축도)      늘인그림(확대도)    원둘레(원주)   어림값(근사값)      셈(계산)             속셈(암산)   맞각(대각)           세모꼴(삼각형)      네모꼴(사각형)   당시에 만들어진 ‘세모’, ‘네모’ 같은 말은 이미 교과서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도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교재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속셈’이란 말도 교과서에는 ‘암산’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오늘날 ‘암산’이란 말보다 ‘속셈’을 더 많이 쓴다. 학원 중 ‘속셈학원’이 얼마나 많은가!   음악 용어로는 찰찰이(탬버린), 짝짝이(캐스터네츠), 칭칭이(트라이앵글), 풍금(오르간), 피리(리코더) 따위가 있다. ‘피리’와 ‘리코더’는 구별돼야 한다고 해서 바꾼 것 같은데, ‘리코더’는 ‘양피리’로 하면 될 것이다.   사회(특히 지리) 교과서에서 쓰는 용어로는 서울(수도), 땅이름(지명), 땅모양(지형), 날줄(경선), 씨줄(위선) 따위가 있다.   국어 교과서마저 우리말 용어를 한자말로 바꿨으니, 글월(문장), 월점(부호) 등과 이름씨(명사), 토씨(조사) 같은 품사 이름들이 그것이다.   어릴 때에는 우리 토박이말을 쓰다가도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꼭 어려운 한자말을 배워 써야 하는 이런 기막힌 교육이 왜 필요한가?   동물 몸 속에는 ‘가로막’이 있지만, 사람 몸에는 그보다 고급(?)스런 ‘횡경막’이 있다고 생각하는 얼빠진 ‘얼간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대뇌’를 죽이고 ‘큰골’을 살려 그 속에 든 ‘얼’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영도		교장선생님, 살려 쓸 용어인 우리말 보다는 ( ) 안의 현재 쓰는 용어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우리말 사랑` 운동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3-11 07: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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