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말에 대한 몇 가지(1) 김정식  (Homepage) 2009-03-16(월) 07:12:29, 3708

1.분별 없이 쓰는 호칭   친정아버지와 남편이 방에서 이야기 중인데, 밖에서 아내가 “아빠, 지금 술상 들여갈까요?” 하고 외친다. 두 분 중 누가 대답할지 궁금하다.   “삼촌, 퇴근할 때 형님 가게에 들렀다 오셔요.” 형수가 출근하는 시동생에게 하는 말이나, 이는 아이의 부름말을 엄마가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다.   요즈음 우리의 말살이 가운데 두드러진 문제가 호칭의 흔들림이다. 이 중 비교적 심한 예가 ‘아빠, 삼촌, 고모, 이모’ 들이다.   많은 젊은 주부들이 남편을 아빠로 부르고 있다. 아이라도 있어서 ‘○○ 아빠’ 또는 ‘애 아빠’ 정도로 불러도 좀 나을 텐데. 갓 결혼한 신부가 남편을 “아빠, 아빠”, “오빠, 오빠” 하고 불러대는 것은 참으로 꼴불견이다. 또 자기 남편을 일컬어 ‘부군’이라 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부군 (夫君)’은 남의 남편을 높여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를 가리킬 때 ‘부인’이나 ‘와이프’라고 하는 것도 몹시 거슬리는 말이다. ‘부인’은 본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므로, 특히 웃어른 앞에서 아내를 ‘부인’이라 일컫는 것은 큰 실례다.   ‘와이프’란 말도 경망스럽고 천박하게 들린다. ‘제댁, 처, 집사람, 안사람, ○○엄마, 어미, 너의 ○○, 아내’ 따위의 말을 경우에 맞게 써야 한다.   그리고 ‘삼촌’이란 말은 엄밀하게 따지면 촌수를 헤아리는 말이지, 부름말은 아니다. 미혼일 때는 ‘도련님’이요, 결혼한 뒤는 ‘서방님’이다. 남에게 말할 때는 시동생이다.   또,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을 ‘고모’라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아이에겐 ‘고모’지만 자신에겐 ‘형님’이나 ‘아가씨’다. 특히,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낯선 여자를 ‘고모, 이모’로 부르고 자기보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낯선 남자를 ‘삼촌’이라 한다든지 더 나아가선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도 삼갈 일이다.   호칭의 혼란은 예절과 질서로 맺어진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를 뿌리째 흔들 수도 있다. 부름말-가리킴말은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과 정서는 물론, 사회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바르게 알고 써야 할 것이다.     2. 사라지는 가족 호칭 “나는 우리 며느리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 ‘할머니’라고 해요. 그러니까 직접 부르는 법은 없지요.” “그 정도면 좋은 편이어요. 우리 집 며느리는 아예 상대해서 말을 나누려고도 하지 않아요. 마지못해 한두 마디 하곤 자리를 피해 버려요.”   노인정에 모인 할머니들의 얘기다.   세상이 변하여 핵가족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는 없으련만, 어째서 남편쪽 혈육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무시하려는 풍조가 생겨난 것일까?   그 풍조에 따라 호칭도 많이 달라졌다. 시누이에게 ‘누이, 형님’ 또는 ‘아가씨’라고 부르는 올케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기 자식의 처지가 되어 엉뚱하게 ‘고모’라는 호칭으로 시누이를 부르고, ‘시아주버니’나 ‘시동생’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큰아빠’와 ‘삼촌’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호칭은 자기 자식에게 3인칭으로 가리킬 경우에만 쓴다는 것을 일러주는 사람도 없다. ‘아기씨’, ‘서방님’, ‘도련님’ 같은 호칭은 구시대의 찌꺼기여서 잊혀져야 할 것인가? 오히려 한국인의 혈연 의식을 강조하는 짙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3. ‘아빠’와 ‘부군(夫君)’   요즈음 아내들이 남편을 제삼자에게 일컬을 때, 흔히 ‘우리 아빠’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상대방은 이 여인을 그 남편의 딸로 생각하고는 “댁의 부친께서는 너무 젊으셔서 부녀 사이가 똑 부부 같아 보입니다.”라고 하여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 때가 있다.   잘못은 아내 쪽에 있다. ‘남편’도 좋고 점잖은 표현으로 ‘주인어른’, ‘바깥어른’도 좋다. 또, ‘우리 집 아빠’나 ‘애기 아빠’, ‘애들 아빠’도 좋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 아빠’란 말을 써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이 여선생님께 “선생님 부군은 어떤 분이세요?” 하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예의를 잃은 말이다. ‘군(君)’이란 아랫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이 ‘부군’은 윗사람이 손아래 여인, 예컨대 제자뻘 되는 여인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래, 결혼도 하고? 부군은 무얼 하시고….”라고 정겹게 물을 경우에 쓰인다. 선생님의 남편에 대한 부름말은 '바깥선생님',  ‘사부(師夫)님’, 성과 이름을 알 때는 ‘(박, 박삼돌) 선생님’이 좋다.   동료교사나 학부모가 여선생님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는 위의 부름말이나, ‘바깥어른’ 또는 직책을 알 때는 ‘박 교수님’, ‘박 부장님’ 등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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