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야기 김정식  (Homepage) 2009-04-10(금) 07:28:42, 3111

“귀한 자녀에게 재산과 논밭을 주느니보다 좋은 이름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듯이, 예부터 명명(命名) 행위는 자녀에 대한 꿈을 담은 것이었다.   <작명법>을 보면, 이름은 ① 부르기 좋고 듣기 좋게 ② 좋은 뜻의 글자로 ③ 어렵고 보기 드문 괴이한 글자는 피하도록 되어 있다.   본디 사람 이름은 짜인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이름을 보면, ‘열마리 곰’, ‘늑대와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머릿속에 바람’ 등이 있다. 우습기도 하고 ‘그것도 이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옛 이름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많다. ‘박혁거세’는 밝은 누리, ‘이사부’는 이은 아비, ‘거칠부’는 거친(힘찬) 아비, ‘서동’은 맛둥이(마를 캐는 아이)의 소리와 뜻을 따 한자로 적은 것이고, ‘주몽’은 활 잘 쏘는 사내라는 부여의 속어이다. (금)알지, (연)개소문, (흑치)상지도 마찬가지다.      석 자로 된 한문자 이름을 우리의 전통처럼 여겨왔지만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조선조 하급 관리 이름인 朴검둥, 金올마대, 韓실구디, 朴타내 등도 2～3음절로 된 고유어였다. 신분이 높을수록 한자 이름이었고 낮을수록 고유어였으며, 여자나 종들에겐 이름조차 제대로 없었다. 문서상 이름이 필요할 경우에는 金씨 딸이면 '김성녀(金姓女)', 예쁘다고 '예쁜이', 섭섭하다고 '섭섭이' 등으로 지어 썼다.  갓 낳았다고 지은 '간난이'는 할머니가 되어도 간난이었고, 그 흔한 '언년이'는 아마 언짢은 년이라는 욕이리라.   우리 겨레 모두의 이름이 한자 이름으로 바뀐 것은 1922년께 조선 호적령이 발표되고 일본식 이름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당시 관립 한성 여학교(지금 경기 여고) 교장 어윤적(魚允迪)은 이름 없는 여학생들에게 생년간지(生年干支), 생월(生月), 용모, 성격에 따라 갑순(甲順), 을례(乙禮), 삼월이(三月伊), 동지녀(冬至女), 입분이(立紛伊), 동굴이(同屈伊) 등으로 지어 주었다.   또, 오늘날 50대 이상의 여자 이름에 많은 순자(順子), 영자(英子), 명자(明子) 등도 일본 이름의 영향이고 보니, 한자 이름은 참된 우리의 전통이라 보기 어렵다.          요즈음 우리말 이름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한자말 이름보다는 토박이말 이름이 훨씬 정답고 부드러우며, 배달 겨레의 후손이라는 자각마저 느끼게 한다. ‘보람, 소라, 송이, 슬기, 아름’처럼 사전에서 좋은 말을 골라도 좋고, ‘예슬(예쁘고 슬기롭게)’, ‘달내(달 비치는 내)’처럼 낱말을 합쳐서 줄여도 좋다.   이름이란 여럿 가운데서 어떤 하나를 가리키는 보람(표지)이다. 곱고 부드러운 느낌에다 그 임자가 지닌 남다른 바탕이나 모습을 나타내든지, 낳아 주신 어버이의 꿈을 담은 것이라면 좋은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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