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낚시를 하지 않는 이유 김영국  (Homepage) 2021-03-20(토) 08:13:18, 16837

유난히 따뜻한 이른 봄날, 손아랫동서 내외와 낚시하러 나섰다. 그냥 가까운 바닷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삼천포 토박이인 동서는 길도 애매한 야산으로 우리를 끌고 갔다. 산 너머에 남해의 봄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내려가니 부서진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네 명이 나란히 앉아 미끼 끼우는 법부터 배웠다. 우리 동네 방조제 수문통은 낚시터로 제법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낚시 경험이 없었다. 어느 날 동네 친구들과 낚싯대를 만들어놓고 물때를 기다리다가 아버지한테 크게 혼쭐이 났다. 낚싯대를 분질러버리고는 내게 훈계를 하셨다. 남자가 주색잡기에 빠지면 반드시 패가망신하기 마련이니 그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예로든 잡기에 노름, 춤, 마작, 바둑에 낚시를 덧붙이셨다. 결국 나는 바닷가에 살면서도 낚시 기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낚시를 던져놓고 물을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물반고기반’이었다. 모처럼 따뜻한 봄날을 맞아 온 동네 고기들이 봄맞이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낚시를 던지고 기다릴 새도 없었다. 던지면 물었다. 건져 올려 낚시에서 고기를 뽑아내어 물통에 담아놓고, 미끼 끼워 던지고, 던지면 물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강태공은 낚시를 던져놓고 세월을 낚고, 월산대군은 가을 밤 낚시에서 한 마리도 낚지 못하고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왔다던데. 한참 신나게 낚아 올리다가 물속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참 평화롭고 정겨운 세상이었다.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잠겨있는 이곳은 그들 물고기들에게, 경치 좋고 먹이 풍부하고 게다가 물살도 비교적 적어, 소풍지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온 가족이 나오기 전에 어미 물고기가 새끼들에게 안전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멀리 혼자 가지 마라, 아무 꺼나 덥석덥석 물지 마라, 낯선 큰 놈이 보이거든 어떻게 숨어라 등등 아니나 다를까, 미끼를 보고 멀찌감치 피하는 놈도 있고, 툭툭 건드려 입질만 하다가 지나가는 놈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놈은 이게 웬 떡 하고 남에게 뺏길세라 잽싸게 무는 놈도 있었다. 더러는 큰 녀석이 그랬지만 대부분 작은 놈들이 겁 없이 물었다. 곁에 있는 가족들이 말릴 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낚여가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정이 어떨까, 모처럼 나들이 나와 희희낙락하다가 삽시간에 초상집이 돼버린 물고기 가족들이 안쓰러웠다. 그것을 두 눈 뜨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엄마 물고기의 회한과 슬픔은 또 얼마나 클까. 동서는 낚시를 멈추고 우리가 낚아 올린 물고기 중에서 먹음직한 놈을 골라 횟감으로 손질했다. 가져 간 양념에 무쳐 소주를 곁들이니 횟집의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별미였다. 그러다가 물속의 저 정경을 보고 나서는 회 맛이 뚝 떨어졌다. 회라면 한 가랑이에 두 다리 넣고 나가는 사람이 웬 일이냐고 아내가 갸우뚱했다. 그러나 저녁에 처제가 끓여준 매운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맛있게 먹었다. 나란 사람의 측은지심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 그건 차마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낚시가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 1위가 됐다던데, 그들을 탓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저 대열에 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터다. 그랬다면 생선을 먹지 않아야 논리가 맞을 텐데, 밥상에 비린내가 없으면 감히 투정은 못해도 못내 아쉬운 표정은 감추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나를 합리화한다. 다들 무사한데 가족 한 사람만 희생이 됐을 때와, 같이 있던 모두가 한꺼번에 희생됐을 때 남은 가족의 슬픔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저인망 그물에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잡혀 가족을 잃은 아픔과, 함께 있다가 자기 가족 한 마리만 눈앞에서 낚여 간 아픔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작은 재미를 위해 물고기 가족의 가슴에 두고두고 한이 될 못을 박는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갸륵한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겨 놓고도, 남이 잡은 생선을 아무렇지 않게 오늘도 즐겨 먹고 있다. 아, 알다가도 모를 나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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