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죽음 김영국  (Homepage) 2021-03-28(일) 08:43:15, 16801

나는 자살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지만, 일정 나이 이상이 되고 특정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막거나 지탄할 자격과 권한이 아무에게도 없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노회찬의 자살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 길을 갔을 것 같다. 다만 진행 중인 수사를 멈추고 다 덮어버리는 관행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보다 더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의 반응이다. 다중으로부터 비난을 받던 당사자가 자살을 감행하면, 갑자기 그의 비리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그를 의인 내지 영웅으로 둔갑시킨다. 이런 현상은 자살을 부추길 위험이 있고 사회의 가치 기준을 흔든다. 그러나 이는 고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 사회 특히 그 진영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박원순의 자살은 나쁘다. 평소 그가 드러낸 말과 행동,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진 속살이 드러날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살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은 앞의 두 분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유독 그의 죽음이 나쁜 것은 그에게는 자기에게 당해온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피해자가 누구인가. 자기가 일방적으로 좋아하여 괴롭혔던, 딸보다 어린 부하 직원이 아니던가. 그 피해자는 자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것도 차기 대권을 꿈꾸는 한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생전에 그렇게 괴롭혀놓고 죽어서는 피해자의 가슴 위에 바윗덩어리 하나를 얹어놓았다. 그의 죽음으로 피해자는 어이없게도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생명을 앗은 가해자의 멍에를 지고 일생을 살게 되어버렸다. 죽음이란 무기로 피해자에게 복수한 꼴이 돼버렸다. 아주 비정한 죽음이다. 뿐만 아니다.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이 지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망설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상사의 횡포를 신고함으로써 뒤따를 신분상 경제적 정신적 피해 말고, 이 인간이 혹시 박원순의 뒤를 따르면 어쩌지 하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여성이 늘어날 개연성이 커졌다. 이런 여성을 거기서 구해낸 최초의 변호사로 각광받았던 그가 절대로 선택해선 안 될 죽음이었다. 정말 무책임한 죽음이다. 그의 죽음이 나쁜 이유는 또 있다. 유서에 그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남겼어야 했다. 공인으로서 이런 일로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시민들에게 사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피해자에 대한 제2 제3의 가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도 이번 보궐선거를 끝으로 그 일을 서서히 잊어가게 될 것이고, 그 진영도 뻔뻔한 민낯을 저렇게까지 까발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이제사 새삼 고인의 죽음을 소환한 것은 그쪽 패거리들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몇백 억의 예산을 날리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납작 엎드려 있어도 시원찮을 사람들이 느닷없이 ‘고인의 향기’ 운운하고, 피해자를 제2의 황우석이라는 등 떠벌이고 나섰다. 고인은 이런 걸 기대하며 죽음의 동기를 애매한 상태로 내버려 둔 건 아닐까. 고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참 야비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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