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 김영국  (Homepage) 2021-10-28(목) 19:43:29, 17277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는 두 개의 미스터리가 있다. 하나는 주인공 홍반장(김선호 분)에 관한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는 고향 마을 공진에 자주 내려왔는데 문득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몇 년 동안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을상을 하고 나타났다.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일절 말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로 주민들은 은연중에 합의한 것 같았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동장 장영국(인교진 분)과 통장 여화정(이봉련 분)의 이혼 사유다. 동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장영국의 양말 때문이라는 정도다. 화정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양말을 벗어 뒤집어진 채로 던져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금슬 좋은 부부로 동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여화정이 그 양말을 들고 그야말로 불같이 화를 내었다. 놀라서 일어난 장영국은 그 기세에 눌려 어쩔 바를 모른다.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이혼하자고 해서 도장을 찍고 만다. 남편도, 동네 사람들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아무도 더 캐묻지 못한다. 나는 후자에 더 흥미를 느꼈다. 화통한 여화정의 성격과 두 사람 사랑의 역사를 감안할 때, 고작 양말 하나로 이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양말은 모기일 따름이다. 그 뒤에 코끼리가 숨어있을 것이다. 그 코끼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여화정을 이해할 수 없고, 두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눈치 빠른 사람은 장영국에 대한 여화정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둔해빠진 장영국은 그것도 모른 채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를 찾을 생각은 않고 헛발질만 거듭하며 매를 쌓아간다. 심리학자 하니슈와 분더러가 함께 쓴 <모기 뒤에 숨은 코끼리>는 임상상담기록이다. 모기처럼 사소해 보이는 기분이나 감정의 뒷면에는 코끼리처럼 거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본인이나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말장난이 심하군.’ 하고 코웃음 쳤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곡을 제대로 짚은 정문일침의 기막힌 표현이었다. 어찌 심리 현상뿐이겠는가. 속이 쓰리고 불편하다. 전에 없던 기침이 잦아졌다. 등등 몸의 이상신호를 사람들은 모기 한 마리 왱왱거리는 정도로 여기고 진통제나 먹으며 지나치기 일쑤다. 그렇게 버티다가 병원에 가서 비로소 코끼리를 발견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사회 문제도 그렇다. 심각한 병리가 나타나기 전에 반드시 그 조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잠수함 속의 토끼,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이 예민한 사람이 있어 경종을 울린다. 그 경고는 대체로 헛소리로 무시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보고 겨울을 예견하고, 개미나 쥐의 움직임을 보고 태풍이나 지진을 대비하기도 한다. 생태계의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모기는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소리를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모기장을 치거나 에프 킬라를 뿌릴 줄 안다. 그러나 그 모기 뒤에 숨어있는 커다란 코끼리를 걱정하고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람의 경보에 귀를 기울이고 대비하는 사회는 더욱 드물다.

김영국		내용에 꼭 맞는 장면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샘.	2021-10-29 07: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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