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단상 김영국  (Homepage) 2021-11-15(월) 20:09:12, 17222

비둘기에 모이를 주지 말라는 펼침막이 공원 등지에 걸려있다. 2009년 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배설물이 각종 세균을 퍼뜨리고 구조물을 부식시킨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아파트 베란다나 에어컨 실외기 등이 그들의 화장실이 되고 보니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그렇다고 독을 넣은 먹이를 주거나 사살할 수도 없다.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밖에 없나 보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워낙 강한 터라,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체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비둘기는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문득 88올림픽 개막식이 떠오른다. 비둘기 수천 마리를 한꺼번에 날려 보냈다. 가을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 날아오르던 비둘기 떼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들은 동원되었다. 평화와 경축의 상징으로 공인된 셈이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 가수 이석의 <비둘기집>에서 비둘기는 사랑의 새로 등장한다. 이 노래가 결혼 축가로, 건전가요로 국민적 사랑을 받음에 따라 비둘기가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하여 비둘기는 전통적 길조인 까치를 누르고 국민의 새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 1960년대에 씌어진 <성북동 비둘기>는 시인 김광섭의 대표작이다. 이 비둘기는 산비둘기다. 이 비둘기가 우리의 비둘기다. ‘사람을 성자로 보고’, 돌 깨는 산울림에 떨고 가슴에 금이 가던 겁 많고 마음 여린 새, 그러나 날렵하고 날쌔어 포수에게 좀처럼 틈을 주지 않던 영리한 새였다. 그런데 인간의 개발로 그들은 삶터를 잃고 삭막한 빌딩숲으로 내몰렸다. 뿐인가. 그냥 살아가는 비둘기에 인간 마음대로 평화, 사랑 따위의 이름표를 달아 사육하거나 수입하여 각종 행사에 써먹고는 방치하였다. 그들의 개체 수는 급증하게 되고, 사람들의 과보호 속에 피둥피둥 살이 올라 닭둘기 소리를 듣고, 아무데나 싸질러대어 쥐둘기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고무줄잣대에 따라 울고 웃다가 결국 박멸 대상이 돼버렸다. 중국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일 중 하나가 닭처럼 포동포동 살이 오른 비둘기란다. 사람이 가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저 비둘기를 왜 안 잡아먹는지 이해를 못 한다. 중국 사람들은 비둘기를 먹느냐는 물음에 그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우리는 네 발 달린 것은 책걸상 빼고는 다 먹는다. 날개 달린 것은 비행기 말고는 다 먹어.” 중경을 다녀온 사람이 증언했다. 광장에 한 사람이, 큰 그물 포대에 비둘기를 담아놓고 팔고 있었다. 옛날 5일장에 닭을 팔고 사듯이 돈을 받고 비둘기를 몇 마리씩 꺼내 주었다. 그런데 해질 무렵이 되자 이 남자는 팔고 남은 비둘기를 다 풀어주었다. 갑갑했을 비둘기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일제히 날아올랐다. 어쩌려고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남자는 태평스럽게 대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다 우리 집으로 갔어.”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경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같이 살던 식구가 팔려가는 것을 하루 종일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주인이 어떤 인간이고, 내일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 봐 놓고도 그 주인집을 애써 찾아간다니! 모든 생명체의 최상위 본능은 생존본능이다. 아무리 새 대가리라지만 지 죽을 줄도 모르고 귀소본능에만 충실하단 말인가. 인간도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어느 양반집에서 노비를 풀어주었더니 노비가 울며 애원했다고 한다. “우릴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마님.” 노예해방 때에도 노예들이 주인집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옛날 얘기만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판치고 있는 진영논리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일단 빠져들면 생존본능 위에 진영논리를 둔다. 좌도 우도 마찬가지다. 지가 죽는 길인지 사는 길인지, 나라가 망하는 길인지 흥하는 길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대가리가 깨져도 진영논리만 따를 뿐이다. 사고력, 판단력 따위는 퇴화해버렸다. 우리가 비둘기다. 우리 머리가 새 대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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