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년 뒤의 전두환 - 이런 생각2 김영국  (Homepage) 2021-12-14(화) 19:22:26, 18694

전두환이 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전두환이 화장실 가는 길에 세상을 떴다. 죽음 복은 누렸다. 그러나 죽은 뒤에는 역시 시끄럽다. 웬만히 욕먹던 사람도 죽고 나면 다들 입조심을 하며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우리의 관례였다. 그런데 전두환의 저승길은 저주의 목소리로 귀가 따가웠을 것이다. 문상도 남 눈치를 볼 지경이었으니, 칭송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화장한 유골은 묻힐 곳을 찾지 못해 집에 안치되어있다. 참 쓸쓸하고 씁쓸한 죽음이다. 그는 7년 동안 대통령이었다. 그렇다면 공도 있을 것이고 과도 있을 것이다. 그걸 객관적으로 조명해볼 분위기가 아니다. 서거 며칠 전 좌파인 문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인가 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이 성취는 역대 정부의 성취들이 모인 것이라고 했다. 이 역대 정부에 전두환 정부는 들어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조문은커녕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김정일의 죽음에 조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100년 뒤에 역사가들은 전두환을 어떻게 평가할까. 먼발치에서 조감하면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과와 공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전두환의 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되고 난 빈 자리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3김이 떠올랐다. 드디어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온 나라가 들떠있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이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나라가 망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5.16으로 집권한 박대통령은 무모한 도전을 했다. 농업으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공업입국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산업화, 근대화의 길을 개척하였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최빈국에서 벗어나 북한경제를 추월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국민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경제발전단계이론의 태두 로스토우는 한국 경제가 드디어 5단계 중 3단계 이륙[take-off]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였다. 이 단계에서 출력을 최대한 높여 솟구쳐야 한다고 했다. 바로 이 무렵 3김이 등장한 것이다. 만약 이들 중 하나가 집권했다면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즈음 종속이론이 후진국들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후진국이 선진국과 무역을 하면 후진국은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김대중도 자급자족을 주장하고 있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이륙하기 시작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국호의 조종간을 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전두환이 판단한 건 아닐까. 나는 가끔, 시대의 요구에 딱딱 맞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국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나라를 세우고, 6.25 때는 외교력으로 나라를 지켜냈다. 그 바탕 위에 박정희는 장기집권으로 나라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전두환은 국민들의 민주화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박정희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고, 그 뒤를 그보다 유연한 노태우가 국민들의 요구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이 차례로 집권하면서 군정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수순이 기막히지 않은가. 이렇게 신생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기간에 이루어내어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기적을 성취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은 스스로 사석捨石이 되거나 악역을 맡아야겠다고 결단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전두환의 두 번째 과오는 5.18이다. 이 부분을 두고 지금 상황에서 전두환을 변호하다가는 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서슬 푸른 지금의 세대가 떠난 100년 뒤의 역사가는 냉정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맨 먼저 광주의 시위대가 무장을 했다는 것에 주목할 것이다. 예비군 무기고를 털고, 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 버스 트럭 등을 탈취하여  시가를 질주하며 고성능 확성기로 시민을 선동하고 가끔은 총을 쏘기도 하였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려 한다,’는 등의 악성 유언비어로 시민들은 흥분하였다. 정지 명령도 먹히지 않았다. 바리케이트를 친 계엄군을 향해 차가 돌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명령으로 발포를 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현장의 장교였다면 상관에게 묻기도 전에 차량의 타이어를 조준하여 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쌍방 간에 살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전두환에게 물어볼 겨를이나 있었을까. 물론 그 시위를 촉발한 책임은 전두환에게 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현장 지휘자이건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100년 뒤의 역사가는 전두환의 공적도 들여다볼 것이다. 가장 큰 공적으로 아마 경제를 내세울 것이다. 그는 경제의 문외한이었다. 뚝심밖에 없었다. 경제전문가 김재익을 발탁하여 그에게 당부했다. “경제는 임자가 대통령이오. 물가 잡아주고 실업자 줄여주시오.”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장정책을 써야 하고 성장을 추구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두 토끼를 잡으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해냈다. 1980년 28.7%이던 물가상승률을 1988년 7.1%로 잡았다. -1.6%였던 성장률을 12%로 올렸고, 5.2%이던 실업률을 2.5%로 낮추었다. 일인당 GDP 1714$를 임기 말에 4754$로 올려놓았다.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 이 무렵이다. 내 주위에 작은 기업을 하는 사람이 몇 있는데 이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때가 사업하기 제일 좋았다고 회고한다. 국민 7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자부하였다. 두터워진 중산층은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 경제 말고도 치적으로 꼽아야 할 것이 많다.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그 준비를 완벽하게 하였다. 6.25전란 후 이루어낸 발전상을 세상에 알리어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세운 계기가 되었다.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게 하고, 처음으로 단임제를 실천하여 평화적 정권 교체의 바탕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00년 후의 역사가들이 돋보기를 갖다 대지 않더라도 전두환이 임기 중에 해낸 업적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전두환은 조선조 광해군처럼 100년 뒤에 문제적 대통령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공삼과칠이니 공칠과삼이니 수치 가지고 밀당을 할지언정 지금처럼 천하에 몹쓸 대통령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역사가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안락사를 허하라-이런 생각3
다음글 :	공정에 대한 의문들- 이런 생각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