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vs Being 김영국  (Homepage) 2022-03-11(금) 19:24:28, 25131

첫손주가 대학생이 되었다.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원서를 낼 때도 나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손주도 그 부모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학교를 떠난 지 십여 년, 입시지도를 해본 지는 이십 년이 훌쩍 넘었으니 내가 아예 곁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복수 합격을 해놓고 나름 행복한(?) 고민을 할 때,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A보다 B가 낫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진로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 하나를 얘기했다. ‘무엇이 되는 것(Becoming)과 무엇으로 사는 것(Being)을 나누어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남들이 선망하고 부모가 욕망하는 무엇이 되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는 기쁨은 순간인 반면 그 무엇으로 사는 기간은 길다. 무엇으로 사는 긴 시간이 자신에게 어떤 시간이 될지를 생각해보지 않고, 사회의 통념에 따라 무엇이 되어놓고는 긴 시간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많이 본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며느리(사위)가 되는 것과 재벌가의 며느리(사위)로 사는 것, 일반인이 연예인의 배우자가 되는 것과 그 배우자로 사는 것, 띠 동갑 이상의 연하와 결혼하는 것과 그런 연하와 평생을 사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세상에 의대생이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고, 시골 마을이면 플래카드라도 걸 일이다. 그러나 의사로 평생을 사는 것도 그렇게 행복한 일일까.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아 하루 종일 환자를 상대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꼭 같은 나날이 평생 반복된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 대가로 일반 봉급자가 생각할 수 없는 돈을 번다. 이 일에 보람과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런 생활이 지겹고 힘들기만 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에게 가운은 수의로, 진료실은 감옥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문과의 고득점자는 법대로 몰아간다.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사다. 집안에 법조인 한 명 있다는 것은 큰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할 수도 있다. 그런데 판검사로서 범죄인을 취조하고 법정에서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삶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변호사의 삶을 담은 수필집을 읽었다. 사회 취약자의 소송을 맡으면 수임료 받아내기가 부담스럽다. 의뢰인이 돈 많은 회사이고 그 상대가 힘없는 서민일 경우, 이겨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것이 변호사의 꿈이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는 승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연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좋은 인생은 의미와 재미가 조화로운 삶이다. 내가 고3이고 성적이 충분히 높다 하더라도 나는 의대나 법대를 가지 않겠다. 진료실이나 법정의 삶은 의미는 있을지언정 재미는 1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교실(강의실)이나 연구실(실험실)의 삶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돈도 덜 벌고, 포털 인명사전에 이름도 못 올리는 인생일지라도, 그 길을 걸어가는 내가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 되는 순간의 화려한 각광보다 은근한 조명 아래의 긴 행복을 선택하겠다, 지금 내가 고3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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