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열쇠17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김영국  (Homepage) 2024-02-01(목) 08:50:49, 54510

나는 지동설이 못내 불편하다. 그게 어떤 이론인데 그걸 의심할 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아침에 동쪽에서 뜬 해가 종일 서쪽으로 이동하여 저녁에 진다. 그리고 해는 밤새도록 지구 뒤편을 돌아서 날이 새면 또 동에서 떠오른다. 그런데 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구가 자전하여 그런 거란다. 지구는 끄떡도 않고 해가 맨날 저렇게 가고 있는데 말이다. 나처럼 모자란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지동설을 갖고 시비를 걸지 않는다. 납득은 잘 안 되지만 자기가 무식하고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가시광선 바깥은 보지 못한다. 작은 것, 멀리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도 극히 제한돼 있다. 가청주파수대(20Hz~20kHz)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박쥐는 초음파를 들을 수 있고, 개는 우리보다 훨씬 낮은 음파도 듣는다. 어디 보고 듣는 것뿐이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또 얼마나 얕고, 얼마나 좁은가. 그런데 우리는  깜빡깜빡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다 보고, 다 듣고, 다 아는 줄 착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듣고 아는 것이 전부이고 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주제넘게 정말 주제넘게 고집을 부리고 눈을 부라리고 고래고래 고함지른다. 그래서 개인은 불행하고 세상은 시끄럽다. 리차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저자)가 옥스퍼드 재학 중에 있었던 일이다. 동물학과 원로교수는 ‘골지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자들의 환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그런 어느 날 미국의 세포학자 특강이 있었다. 동물학과 전 학생과 교수가 모인 자리에서 그 학자는 ‘골지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빼박 증거를 제시했다. 강의가 끝나자 그 노교수는  젊은 강사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모두가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지난 15 년간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을 깨우쳐주셨소.”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다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당연히 그 박수는 노교수를 향한 것이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5차 솔베이회의(물리학자대회)가 열렸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가 막 태동하기 시작한 양자역학을 설명했다. 발표가 끝나자 아인슈타인이 반박했다. 자연현상은 확률이 아니라 인과법칙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강의 내용뿐 아니라 양자역학 자체를 부정하였다. 이때 그의 유명 어록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가 나왔다. 그런데 이 일화를 소환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것이다. 고전역학의 시대는 저물고 지금은 양자역학의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진실은 진리가 아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했듯 우리의 의심과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일 뿐이다. 반증되기 전까지만 진실일 뿐이다. 그러니까 옥스퍼드의 노과학자, 아인슈타인도 틀릴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런 과정에서 과학은 발전해왔다. 과학의 세계에서 저 대단한 과학자도 틀릴 수 있는데, 우리 같은 범인이 정답이 없다는 이 복잡한 세상사를 어찌 내 생각이 옳다고 우길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내가 틀렸던 적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지동설도 모르는 주제에 참으로 많이 깝죽댔었다.(졸문 <내가 틀렸다>교육사랑121 ) 하나만 떠올려보자. 나는 그 무렵, 너도 나도 다 연예인, 운동선수 되겠다고 하면 대체 소는 누가 키우노. 나라 망쪼 아닌가. 진로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혼자 걱정하고 혼자 열을 올렸다. 내 애국심, 내 안목의 수준이 그 정도였다. 늘그막에 주제를 파악하고 결심했다. 꼬치꼬치 따지지 말자. 바락바락 우기지 말자. 그러자 인간관계가 원만해지고, 가정이 평화로워지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졌다. 태국의 밀림에 외국인 불자들을 모아 수도하는 사원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 불자들을 지도하는 스님들 중에는 선배 서양 사람들이 많았다. 아잔 자야사 스님은 영국인이었다. 오랜 만에 고향을 다녀온 스님이 철야정진 중인 학승들 앞에 섰다. “오늘 밤엔 여러분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마법’, ‘신비’ 등은 사원에서 금기어로 알고 있는 터라 제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시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씩 반복하세요.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 날 아침 풀밭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말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

로그인을 하셔야 코멘트(덧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불편한 소통 - 이 드라마1
다음글 :	행복의 열쇠16 - 스토아철학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