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선물 - 이런 생각13 김영국  (Homepage) 2024-02-28(수) 18:07:26, 45216

우리 위층에 우리 또래의 노부부가 산다. 엘리베이터에서 누르는 층수를 보고 수인사를 했다. 한눈에 젠틀해보였다. 손주들 때문에 시끄럽지 않느냐며 미안해했다. 어쩌다 휴일 하룬데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전날 밤엔 9시가 넘었는데도 안방에서 쿵쾅거리는 바람에 수면 리듬이 깨지고 말았다. 그날 초저녁에도 여전하였다. 생각하니 방학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금방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조금 미안해졌다. 기척이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 모니터를 보니 낯선 젊은이였다. 잠옷 차림으로 누구냐고 물었더니 위층이란다. 할머니 목소리도 들렸다. 패딩을 대충 걸치고 문을 열었더니 할머니와 그 아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비타500 한 상자를 내밀었다. 전화한 것도 민망한데 뭘 이런 것까지 사오셨냐고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내 차림새가 실랑이를 벌일 처지가 아니었다. 얼른 조아리며 받았다. 집사람이 그걸 왜 받았냐고 책망했다. 끝까지 안 받고 사양했어야 했을까. 당장 돌려드렸어야 했나. 아니면 비슷한 가격의 다른 물건을 사드려야 하나. 며칠 고민하는 사이 설이 다가왔고 설이 지나간 지 한참인데 아직 미적거리고 있다.(설에 손주들이 왔을 텐데 조용했다. 낮엔 좀 뛰어도 되는데......) 돌아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그런 난감한 선물을 참 많이도 받았다. 지금의 법이나 사회 분위기로는 있을 수 없는 그런 선물이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촌지다. 처음엔 한사코 손사래를 쳤으나 나중엔 그냥 조용히 받았다. 몰래 서랍에 넣고 간 경우, 학생을 통해 돌려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선배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그 학부모와 학생이 상처를 받는다고 말렸다. 스승의 날 등에 학생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그랬다. 거기엔 고가의 셔츠나 넥타이 등 학생 용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개별적으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염치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내 불편한 마음을 누그려주는 책을 읽었다. 1년 동안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본 도나 캐머런의 체험담 <카인드>가 ‘친절’하게 나를 다독여주었다. (좀 길어도 이해해주시길.......) ‘우리는 주고 싶은 것을 모두 줄 자산은 없지만, 고맙게 받을 능력은 항상 지니고 있다. 듣기에는 간단한 말이지만 이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했는데 당신이 사양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럴 여유가 없거나, 당신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냥 어색한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선물이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거나, 빚지는 기분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이, ‘속셈이 뭐지?’라고 의심하는 냉소적인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제안을 거절했을 때 상대가 기뻐했는가, 아니면 실망했는가? 돌이켜생각해보면, 그냥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합니다.”하고 받았다면 서로 더 만족하고 훨씬 더 편하지 않았을까.‘ 김건희 여사가 친분 있는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받은 것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몰래 카메라에 찍힌 바로는 몇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받은 모양이다. 사실 그 선물이 그분에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겠나. 그러나 자기 신분이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온 국민이 분노할 일인가? 촌지나 선물을 염치없이 받아온 나로서는 돌을 던질 수가 없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나쁜 놈’과 ‘모자란 놈’을 구별해서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김여사는 나쁘다기보다 모자란 편에 속하지 않을까. 반면에 성직자라는 사람이 총선에 이용해먹을 요량으로 옛날의 친분을 빌미로 치밀하게 준비하여 상대를 함정에 빠뜨린 행위는 야비하다. 전형적인 ‘나쁜 사람’이다. 김여사는, 친하다고 믿은 기자에게 온갖 수다를 다 떨었는데, 그것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대선 정국에 이용당하는 봉변을 겪기도 했다. 그러고도 인간관계를 점검하지 않았고, 그쪽 사람들의 악랄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당했다. 전형적인 ‘모자란 사람’이다. 모자람에 상응하는 감정은 분노 증오 경멸이 아니라, 연민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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