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마취제 - 수술실에서 비명이 사라지다 송성수  (Homepage) 2017-02-10(금) 12:17:28, 11056

[마취제] 수술실에서 비명이 사라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바로 가기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는 관우가 수술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독화살에 맞은 관우가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는 수술에도 태평히 바둑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술은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1820년대에 에든버러 대학의 의학부를 다녔던 찰스 다윈도 환자가 수술을 받는 끔직한 광경을 목격한 후 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1840년대에 들어와 수술에 마취제가 사용됨으로써 극복되기 시작했다.      <그림> 1753년의 수술 광경을 묘사한 삽화 마취제가 없던 시절 마취(anesthesia)란 용어는 ‘감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1세기 그리스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환자에게 만드라고라의 뿌리로 만든 술을 마시게 한 후 수술을 했는데, 그 때 환자가 통증에 거의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취제가 등장하기 전에는 수술을 할 때 진통 효과나 환각 효과를 지닌 약초가 사용되곤 했다. 여기에는 대마, 아편, 히오시아민, 만드라고라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환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랐고, 환자가 죽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이에 따라 외과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들이 최대한 술을 많이 마시게 한 후 수술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놓고 수술을 시도하는 의사들도 있었다.   <그림> 마취용 약초로 오랫동안 사용된 만드라고라 마취제가 등장하기 직전인 1841년에 있었던 절단 수술에 대해 ≪뉴욕 트리뷴≫ 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환자는 남자 아이였다. 곁에서 아버지가 인자한 손길로 아이를 지키며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 시간이 다가왔다. 직원들이 환자를 거칠게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온몸을 묶었다. 두 명의 외과의사가 칼질을 할 때마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너무도 애처로워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수술의 첫 번째 과정이 끝나자 소년은 ‘투명한 고통’ 속에서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수석 의사가 잡아당기는 톱날이 근육을 썰었다. 이윽고 톱이 뼈에 닿았고, 소년은 왕복 세 번의 무거운 톱질로 뼈가 잘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일랜드의 어떤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자기가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마음씨 좋은 영국인 독신자가 있었는데, 긴 세월 동안 숱하게 많은 불행한 일들이 닥쳐도 그 때마다 묵묵히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과의사가 그에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유서를 쓴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와 같이 외과수술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외과수술이라는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마취 가스를 찾아서 18세기에는 기체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기체화학(pneumatic chemistry)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영국의 기체화학을 이끌었던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는 매우 다양한 기체를 포집했는데, 그 중에는 1772년에 발견한 아산화질소도 있었다. 이어 1799년에 데이비(Humphry Davy)는 아산화질소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알아내고 그 기체에 ‘웃음 가스(laughing gas)’라는 별명을 붙였다. 데이비는 아산화질소가 외과수술의 고통을 줄이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818년에는 데이비의 제자인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황화에테르의 증기도 아산화질소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림> 데이비가 왕립연구소에서 아산화질소(웃음 가스)로 실험하는 광경을 묘사한 삽화(1802년) 그 후 아산화질소와 에테르는 유흥이나 오락을 위한 모임에 널리 사용되었다. ‘웃음 가스 파티(laughing gas party)’ 혹은 ‘에테르 유희(ether frolics)’로 불린 행사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아산화질소나 에테르의 냄새를 맡으면서 기분 좋은 환각 상태에 빠져 들었다. 가스를 흡입하고 황홀경 속에서 소동을 벌이다가 타박상을 입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아산화질소를 담은 부대나 에테르를 넣은 플라스크를 가지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시연하는 이색적인 직업도 생겨났다. <그림> 웃음 가스 파티에 관한 삽화(1830년). 꾸지람이 잦은 아내도 웃음 가스로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조지아 주의 의사인 롱(Crawford Long)도 에테르 유희를 좋아했다. 그와 친구들은 에테르에 취해 여기저기 부딪혔는데,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멍이 들거나 살갗이 벗겨져도 에테르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던 중 에테르 유희에 함께 참석했던 베너블(James Venable)이 자신의 목에 난 종양을 제거해 달라고 롱에게 부탁했다. 그 때 롱은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하면 수술의 고통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842년 3월 30일에 롱은 수건에 에테르를 적신 후 베너블에게 들이마시도록 했다. 베너블이 정신을 잃자 롱은 종양을 제거했다. 몇 분 뒤에 깨어난 베너블은 수술을 할 때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롱은 몇 차례의 수술에 에테르를 활용하여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롱은 역사상 처음으로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했지만, 이를 즉각적으로 보고하지 않았다. 그의 실험 결과는 1849년이 되어서야 ≪남부 내과 및 외과 저널≫에 발표되었다.     “신사 여러분,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 1844년 12월 10일에는 코네티컷 주의 치과의사인 웰스(Horace Wells)가 쿨리(Sam Cooley)와 함께 웃음 가스 파티에 참석했다. 웰스는 가스의 효과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린 후에 쿨리의 바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쿨리는 아산화질소에 취해 있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입었는데,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웰스는 이를 뽑을 때 아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후 다음 날에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에 그는 아픈 사랑니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조수인 리그스(John Riggs)에게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했던 것이다. 웰스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했고, 리그스는 웰스의 이를 뽑았다. 몇 분 뒤 의식을 되찾은 웰스는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건 역사상 커다란 발견이야. 나는 핀으로 찌르는 정도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고!” 그 후 웰스는 치과수술에 아산화질소를 계속해서 사용했고, 그의 진료실에는 아픈 이를 고통 없이 제거하기 위한 환자들이 몰려 들었다. 웰스는 아산화질소를 외과수술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후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외과과장인 워렌(John C. Warren)을 찾아갔다. 워렌은 1845년 1월 말에 웰스가 공개적으로 수술을 시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한 학생이 아픈 이를 뽑아달라며 자원했는데, 웰스는 아산화질소를 투여한 후 학생의 이를 제거했다. 그런데 이가 뽑히는 순간 그 환자는 신음과 비슷한 소리를 냈다. 환자가 이전에 받았던 치과수술에 비해 훨씬 통증이 덜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웰스에게 야유를 보냈다. 관중들은 웰스를 어쭙잖은 시골뜨기 치과의사로 여기면서 마취에 관한 그의 주장을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웰스와 비슷한 시기에 마취제에 도전한 사람은 그의 제자이자 동료인 모턴(William T. G. Morton)이었다. 당시에 보스턴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던 모턴은 웰스와 워렌을 연결시켜 준 인물이기도 했다. 모턴은 여러 차례의 동물실험을 실시한 후 보스턴의 저명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잭슨(Charles Jackson)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때 잭슨은 아산화질소보다는 에테르가 마취제로 적합하다는 점을 조언했고, 모턴은 신문기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에테르를 사용한 치과수술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그 수술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 덕분에 모턴의 병원은 치과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들과 수술 광경을 관찰하려는 의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워렌은 웰스에 이어 모턴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 1846년 10월 16일에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역사적인 공개 수술이 이루어졌다. 참석자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모턴은 에테르로 환자를 마취시켰고, 워렌은 솜씨 좋게 환자의 목 뒤에 있던 혹을 제거했다. 수술이 끝난 뒤 워렌은 관중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사 여러분, 이것은 사기가 아닙니다.” 그 후에도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는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한 외과수술이 몇 차례 더 진행되었고, 바이즐로(Henry J. Bigelow)는 수술 사례를 정리하여 11월 18일에 ≪보스턴 내과 및 외과 저널≫을 통해 발표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1882년에는 힌클리(Robert Hinckley)라는 화가가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수술의 장면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지금도 보스턴 의학도서관 입구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그림>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수술에 대한 그림 우선권 분쟁이 빚은 비극 마취제가 널리 확산되면서 외과학은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았지만, 마취제의 도입에 기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문제는 1846년 11월 12일에 모턴이 ‘레테온(letheon)’으로 이름을 붙인 에테르 흡입기로 특허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오래 전에 발견된 에테르로는 특허가 곤란했기 때문에 모턴은 몇 가지 성분을 첨가하고 그럴듯한 흡입장치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이에 잭슨은 자신이 모턴에게 에테르를 마취제로 권유했다고 반박하면서 모턴의 처사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웰스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가스 흡입을 통해 환자를 마취시킨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턴과 잭슨이 훔쳤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롱도 자신이 보스턴의 의료진보다 4년이나 앞서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했다는 점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모턴이 특허를 받은 에테르 흡입기       마취제에 관한 우선권 분쟁은 모턴의 청원에 따라 미국 의회가 다루게 되었다. 의회는 마취제를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10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기로 하고 1849년, 1850년, 1854년의 세 차례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모턴은 오랜 논란과 싸움에 지친 탓에 뇌혈관에 충혈이 생겨 1868년에 세상을 떠났다. 웰스는 아산화질소 대신에 클로로포름으로 실험을 하다가 거기에 중독되고 말았고, 결국 1878년에 자살의 길을 선택했다. 잭슨은 모턴의 묘비에 새겨진 “마취제 흡입의 발명가”라는 글귀를 보고 발작을 일으켜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880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에 반해 롱은 자신의 직업을 신이 주신 소명으로 여기며 평생 동안 만족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다.   에테르에 이어 새로운 마취제로 각광을 받은 것은 클로로포름이었다. 클로로포름을 수술에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 에든버러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던 심슨(James Y. Simpson)이었다. 그는 1847년에 환자에게 에테르를 사용해 보았지만, 기관지와 위장 관에 자극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다른 마취제를 찾아 나섰다. 곧이어 그는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하여 산부인과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위적으로 통증을 없애려는 시도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란은 빅토리아 여왕이 심슨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단락될 수 있었다. 여왕이 1853년에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여 왕자를 순조롭게 분만했던 것이다. 당시 영국 왕실은 심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여왕 폐하께서는 지난 번 레오폴드 경을 분만하실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결과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분만도 원활히 이루어졌고, 산후 회복도 정말로 순탄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소식이 선생을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클로로포름이 보다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황상익, <인물로 보는 의학의 역사> (여문각, 2004). 마르틴 슈나이더(조원규 옮김), <테플론, 포스트잇, 비아그라> (작가정신, 2004). 줄리 펜스터(이경식 옮김), <의학사의 이단자들> (휴먼앤북스, 2004). 로버트 애들러(조윤정 옮김), <의학사의 터닝 포인트 24> (아침이슬, 2007). 황진명, 김유항, <과학과 인문학의 탱고> (사과나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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