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세탁기 - 가사기술은 주부의 노동을 줄였는가? 송성수  (Homepage) 2017-03-27(월) 10:52:50, 1184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52630&cid=55589&categoryId=55589 [세탁기] 가사기술은 주부의 노동을 줄였는가? 산업화의 상징에 해당하는 기계는 20세기에 들어와 가정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탁기, 냉장고, 진공청소기 등과 같은 가전제품은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가전제품의 확산을 배경으로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도 변화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공장에서의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가정에서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in home)’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정에서의 산업혁명은 가사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새로운 가전제품의 출현으로 가사노동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과연 그랬을까? <그림> 1876년에 아르헨티나의 한 잡지에 실린 광고로 손빨래와 세탁기를 대비시키고 있다. 인류와 함께 한 세탁 세탁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옷을 입는 것과 빨래를 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원전 1900년경의 고대 이집트 벽화에는 강가에서 빨래를 두들겨서 빨거나 긴 막대에 빨래를 꿰어 비틀어 짜고 있는 광경이 나타나 있다. 로마에서는 빨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으며, 귀족들이 세탁을 담당하는 노예를 고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와 근현대 화가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탁을 보조하는 전통적인 도구로는 빨래방망이와 빨래판을 들 수 있다. 빨래방망이와 빨래판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빨래방망이는 강가의 바위 위에서 옷을 두드려 빠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빨래판은 물을 길어오거나 우물을 사용하여 빨래를 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빨래판의 재질은 나무에서 금속으로, 나중에는 플라스틱으로 변해왔는데, 최초의 금속 빨래판은 미국의 발명가 러스트(Stephen Rust)가 1833년에 발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까지도 빨래판이 세탁기보다 더욱 효과적인 세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림> 빨래판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매우 오래된 세탁도구에 해당한다.   아내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세탁기 기계식 세탁기는 늦어도 18세기 중반에 탄생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젠틀맨 매거진≫ 1752년 1월호는 세탁기에 대한 설계도를 선보였고, 독일에서는 1767년에 섀퍼(Jacob Christian Schaffer)가 세탁기에 대한 설계도가 담긴 책자를 발간했다. 이어 1797년에는 브릭스(Nathaniel Briggs)가 미국에서 세탁기에 대한 특허를 처음 받았다. 브릭스의 세탁기 안에는 빨래판이 들어 있었으며, 빨래판 위에서 세탁물, 물, 비누가 섞이면서 오물이 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별도의 빨래판 없이 작동되는 현대적 개념의 세탁기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출현했다. 1851년에 킹(James King)은 드럼을 사용하는 세탁기를 처음 발명했고, 1858년에 스미스(Hamilton Smith)는 회전식 세탁기로 최초의 특허를 받았다. 이어 1874년에는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이 아내에게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 스스로 세탁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세탁기로 평가되고 있다. 아내가 좋은 반응을 보이자 블랙스톤은 곧바로 냉장고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세탁기를 선전하는 데에는 박람회가 널리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1876년에 콜빈(Margaret Colvin)은 새로운 모델의 회전식 세탁기를 개발한 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박람회에 출품했다. 그것은 단 5분 만에 남성용 셔츠 20장을 깨끗하게 세탁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를 계기로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수요가 현실화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주로 보급된 것은 크랭크를 돌리는 수동식 세탁기였다. 1890년경에는 ‘여성의 친구(Woman’s Friend)’라는 상표를 가진 세탁기가 시판되어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림> 19세기 말에 상당한 인기를 누린 세탁기, ‘여성의 친구’ 세탁기의 확산과 혁신 20세기에 들어서는 전기 서비스의 확산을 배경으로 기계식 세탁기가 전기식 세탁기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전기세탁기로는 헐리 사(Hurley Electric Laundry Equipment Company)가 1907년에 시판했던 ‘토르(Thor)’가 거론되어 왔다. 그것은 피셔(Alva J. Fisher)의 설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피셔는 전기세탁기에 대한 특허를 1909년에 출원한 후 1910년에 등록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피셔의 토르를 최초의 전기세탁기로 보는 견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904년에 이미 전기세탁기에 대한 광고가 게재된 바 있으며, 피셔 이전에도 전기세탁기로 특허를 받은 사람들이 제법 존재했다는 것이다. 누가 전기세탁기를 처음 발명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20세기 전반에는 세탁기가 다양한 형태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선진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28년을 기준으로 약 91만 3천 대의 세탁기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세탁기의 보급은 대공황으로 잠시 위축되었다가 1930년대에 본격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1941년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52%가 세탁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세탁기의 혁신은 계속되었다. 1934년에는 미국 텍사스 주의 포트워스에서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세탁기가 설치되었고, 1937년에는 벤딕스(Bendix Corporation)가 완전히 자동화된 세탁기를 개발했다. 이어 1947년에 벤딕스는 프런트 로딩 모델(front-loading model, 앞쪽에 있는 문으로 세탁물을 넣고 빼는 세탁기)을, 제너널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은 탑 로딩 모델(top-loading model, 위쪽에 있는 문으로 세탁물을 넣고 빼는 세탁기)을 선보였다. 1950년대에는 통을 두 개 설치하여 세탁과 탈수의 기능을 분리한 2조식 세탁기가 나왔으며, 1970년대에는 세탁기의 모터 속도를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장치가 도입되었다.   <그림> 벤딕스가 시판한 전자동 세탁기의 초기 모델 최초의 국산 세탁기는 1969년에 금성사(현재의 LG전자)가 출시한 것으로 제품명은 ‘백조’, 모델명은 ‘WP-181’이었다. 당시에 금성사는 일본 히타치와의 기술제휴를 바탕으로 1.8㎏급의 2조식 세탁기를 개발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백조 이외에도 무지개(대한전선), 은하(삼성전자), 백구(신일산업), 비너스(한일전기) 세탁기 등이 출시되었고,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현재의 동부대우전자) 사이의 세탁기 경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세탁기 보급률은 1975년에 1%에 불과했지만 1985년의 26%를 거쳐 1993년에는 91%를 기록했다. <그림> 1969년에 금성사가 출시했던 백조 세탁기 가사노동의 항상성 세탁기의 확산은 가사노동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빨래 통에서 세탁기로의 변화는 베틀에서 방직기로의 변화에 못지않게 근원적인 발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오랫동안 세탁기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킨 주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세탁기에 대해서는 “가사노동을 줄여준 기특한 발명품”, “육체노동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발명품”,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능하게 한 획기적 발명품” 등과 같은 수식어가 뒤따르고 있다. 세탁기로 인해 가사노동이 줄어들었고,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었으며,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는 논리이다. <그림> “행복한 날”을 표방한 1910년의 세탁기 광고. 세탁기를 사용하면 손빨래로부터 해방되어 시간과 노동력을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한 하루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통념에 본격적인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여성 경제학자인 바넥(Joann Vanek)이었다. 그녀가 1974년에 발표한 실증연구의 결과는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1926～1966년의 40년 동안 미국의 전업주부들이 가사노동에 사용한 시간은 주당 51～56시간으로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점도 예상을 뒤엎었다. 가전제품이 보급되는 양상을 고려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도시 지역일수록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들어야 마땅해 보이는 것이다. 가장 의외의 결과는 세탁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주당 세탁 소요시간이 1920년대에 5～6시간이었던 것이 1960년대에는 6～7시간으로 집계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바넥은 세탁 노동과 관련된 기술혁신으로 전기세탁기, 전기다리미, 전자동 세탁기, 자동건조기 등을 들면서 해당 기술이 보급된 시기와 세탁에 소요된 시간을 비교했는데, 흥미롭게도 전기세탁기와 전자동 세탁기가 보급된 시기에 오히려 세탁 소요시간이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대해 바넥은 세탁물의 양과 세탁의 횟수가 증가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엄마에게 더 많은 일을≫ 바넥의 연구에 대한 체계적인 답변은 여성 기술사학자인 코완(Ruth S. Cowan)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녀의 견해는 1983년에 발간된 ≪엄마에게 더 많은 일을(More Work for Mother)≫이라는 화제작에 집대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코완은 20세기 전반에 진행된 ‘가정에서의 산업혁명’이 가정주부에게 더 많은 일을 안겨 주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미국 사회의 중산층 가정을 주된 대상으로 삼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코완은 새로운 가사기술이 경감시킨 것은 가정주부의 노동이 아니라 남성과 자녀의 노동이었다고 지적한다. 석탄 나르기, 물 운반하기, 장작패기, 불 지피기, 카펫 청소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함께 코완은 각종 신기술의 출현이 생활표준의 향상과 결부되어 주부의 노동량이 더욱 많아졌다고 주장한다. 침대보와 속옷은 더 자주 갈아입게 되어 세탁물이 많아졌고, 식생활의 다양화로 요리는 더욱 복잡해졌으며, 주부가 자동차를 사용함에 따라 쇼핑과 자녀운반이라는 새로운 노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림> 코완의 ≪엄마에게 더 많은 일을≫은 발간 다음해에 미국기술사학회의 덱스터 상(Dexter prize)을 수상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당시 미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를 배경으로 진전된 노동력 구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운 가사기술의 출현으로 남성의 가사 일이 줄어드는 가운데 남성은 임금노동의 영역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또한 산업화 이전의 시기에 중산층 가정에서 고용했던 하인들 역시 가사노동보다 더욱 높은 임금을 받는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게다가 이전에 가사노동을 부분적으로 보완해 주었던 세탁업자나 배달업자와 같은 상업적 대리인은 세탁기와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새로운 형태의 가사노동은 가정주부에 관한 이데올로기의 변화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난 후에 미국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이 더 이상 허드렛일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부는 가족이 옷의 얼룩 때문에 겪을 무안함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가족에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주부의 성실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고, 욕실 청소는 질병에서 가족을 보호하는 모성본능을 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여성잡지들은 가정주부가 이렇게 고상한 노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일종의 ‘죄’라고 표현했다. 책의 끝 부분에서 코완은 “엄마의 일 줄이기(Less Work for Mother)”를 제안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제안은 자신의 일상 경험에서 도출되고 있다. 한번은 코완이 중병을 앓으면서 남편이 세탁을 맡게 되었다. 그녀가 매우  끈질기게 세탁 작업의 규칙을 가르쳐주어도 남편은 의류의 색상이나 소재에 관계없이 빨랫감을 섞어 세탁기에 넣었다. 부인의 잔소리가 심해지자 남편은 자신의 방식대로 세탁을 해도 단 하나의 옷도 망가지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코완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가정주부를 학대하는 규칙은 필요 이상으로 많다. … 현재 우리에게 의미 있는 규칙만을 골라낼 수 있다면, 가사기술이 우리를 통제하는 대신 우리가 가사기술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루스 코완(김성희 외 옮김), <과학기술과 가사노동(More Work for Mother)> (학지사, 1997). 쥬디 와이즈먼(조주현 옮김), <페미니즘과 기술> (당대, 2001). 알프리트 슈미츠(송소민 옮김),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서해문집, 2014). 윤정로, <사회 속의 과학기술> (세창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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