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명함을 보며 송성수  (Homepage) 2010-12-18(토) 13:17:30, 3721

부산대 교직원 글벗모임에서 발간하는 <미리내문학> 제5호 (2010. 12)에 게재된 글입니다. -------------------- 새 명함을 보며 송성수(기초교육원 부교수, 과학기술학) 부산대학교에 둥지를 턴 지 4년이 되었다. 그 동안 제법 열심히 살아온 덕분인지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했다. 그 기념으로 명함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번 명함은 옛날 명함과 제법 많이 달라졌다. 우선, 나의 소속이 교양교육원에서 기초교육원 교양교육센터로 변경되었다. 작년 초에 교양교육원이 기초교육원으로 개편될 때 나는 “교양이 부족해서 교양교육원에 배속되었는데, 교양이 조금 쌓이려고 하니, 이번에는 기초가 부족하다고 해서 기초교육원 소속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조직의 개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교양교육원이 교양교육센터로 바뀐 것은 우리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위상이 낮아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의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교양교육원 교수라고 하면, “네 아빠 시간강사 아니니?”하고 묻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교양을 낮은 수준의 학문으로 간주하는 것이 지배적인 풍조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는 모두 교양이고, 전공보다 더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 교양이다. “잘 키운 교양 하나, 열 전공 안 부럽다”는 말로 자위해 본다. 물론 나에게도 전공은 있다. 내 전공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접근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분야 분류표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 예술체육 이외에 복합학이 있는데, 과학기술학은 복합학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나는 우연찮게 과학기술학을 비교적 일찍 공부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특히 동남권에 과학기술학을 확산시키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삼으면서 살고 있다. 처음에 부산대에 왔을 때에는 과학기술학을 선전(?)하느라 에너지를 제법 많이 쏟았다. 나의 영문 이니셜이 SSS인데, 과학기술학(STS)은 내 동생이고, 큰 형님은 서울방송(SBS)을 운영하고 계시고, 누나 중에는 원조 걸 그룹인 SES도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학이 생소한 모양이다. “과학기술을 전공하시는 분인가 봐요. 과학기술 중에 어떤 분야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과학기술학을 널리 알린다는 나의 노력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 그래서 이번 명함에서는 “과학기술학”을 쓰지 않고 세부전공에 해당하는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정책”으로 표기했다. 이번 명함에는 내가 관여하고 있는 대학원 과정도 명기하고 홈페이지 주소도 실었다. “과학기술학 협동과정”과 “기술사업정책 전공”이 그것이다. 전자는 부산대 협동과정 중의 하나이고, 후자는 계약학과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공계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인문사회계의 경우에는 대학원생을 모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교수가 직접 나서서 대학원 과정을 홍보해야 하는 것이다. 명함에다 대학원 과정을 표기하고 다니다 보니, 더욱 책임감이 느껴지고 언행도 조심스러워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명함은 옛날 명함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사진까지 싣는 바람에 이번 명함이 약간 난삽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부교수 시절에는 선전할 것이 많아 명함이 복잡해지는 것일까? 몇 년 뒤에 정교수가 될 때 내 명함은 어떤 모양새를 띠고 있을까? … 이런 저런 의문을 던지다 보면, 명함이 꼭 나의 자화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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